명인 · 고전사

임금의 사위 - 부마(駙馬) 의 유래

청정지역 2021. 3. 28. 19:35




임금의 사위 - 부마(駙馬) 의 유래


부마란?
중국에서는 위(魏) ·진(晉) 이후에 임금의 딸과 결혼한 사람에 한하여 부마라는 직책으로 임명하였으며 이로써 임금의 사위를 부마라 부르게 되었다.

한때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삼성전기고문의 이혼이 세상의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하였다.

또한 임우재고문이 삼성의 고위임원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옛날에 부마는 잘못하면 산속에 들어가 살았다."

명문가의 사위가 꼭 좋기만 한것은 아닌가 봅니다.

암튼.
부마의 유래를 더듬어 올라가 봅니다.

중국 동진의 간보가 편찬한 설화집 ‘수신기(搜神記)’ 권16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전국시대 진나라 농서 땅에 신도탁이라는 젊은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가 학문이 뛰어난 스승을 찾아 옹주로 가던 도중 얼마를 앞두고 날이 저물어 더는 갈 수가 없었다.

하룻밤 묵을 곳을 찾다가 큰 기와집을 발견하고 다가가 문을 두드리자 청의를 입은 하녀가 나오더니 그를 안주인에게 안내하였다.

신도탁이 방문을 들어서자 궁장차림의 미녀가 일어 나면서 그를 반겼지만 어딘지 수심찬 표정이었다.

그는 여주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감사의 뜻을 표하려 하는데 안주인은 아름다운 용모였으나 근심 어린 모습으로 그에게 자리에 앉기를 청했다.

그녀는 신도탁을 매우 친근하게 대해주며 술과 안주를 풍성하게 내어오게 하여 대접하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신도탁이 그 동안 보고 들었던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자 마치 그러한 생활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것 처럼 즐거워 하였다.

그녀는 술을 마신 후, 아득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진나라 민왕의 딸이었는데, 시집가려고 조나라로 갔다가 혼인을 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죽은지 벌써 23년이 지났군요.

비록 처음 뵙지만, 매우 오래전 부터 당신을 기다린 것 같습니다. 제가 싫지 않으시다면 당신과 부부 되기를 원합니다."

도탁은 이 말을 듣고, 마치 아득한 꿈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도탁을 바라 보았고 도탁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흰 피부에서 흩어져 나오는 그윽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날 밤,
그렇게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삼일 밤낮을 함께 생활한 후 진녀가 도탁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승의 사람이고, 저는 저승의 귀신입니다.
제가 당신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삼일뿐입니다.
만약 더 오래 있게된다면, 재앙이 닥쳐 올 것입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부부의 사랑도 다하지 못하였지만, 이제 이별하여야 합니다. 떠나기 전에 당신에게 정표로서 이것을 드리지요."

진녀는 침대 뒤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더니, 그 안에서 금베개를 꺼내어 그에게 주었다.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아쉬운 이별을 하였다.

진녀는 청의여인에게 그를 대문까지 바래다 드리라고 하였다. 도탁이 몇 걸음을 걸은 후, 헤어지기 아쉬워 고개를 돌려보니 그 저택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저택이 있었던 자리는 쓸쓸한 벌판으로, 거기에는 쓸쓸한 무덤 하나만이 있었다.

도탁은 귀신에게 홀렸던 사실을 깨닫고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얼마 후, 숨이 차오르도록 달음질을 하고서 멈추었지만 금침은 분명히 그의 품속에 있었다.

그는 진나라에 도착하자, 장터에 나가 금침을 팔아버리려 하였다.

그때마침 진나라 왕비가 궁을 나와 시장으로 놀이를 가다가, 도탁이 금침을 팔려고 하는 보고, 매우 괴이하게 생각하여 도탁에게 금침의 내력을 물었다.

도탁이 사실대로 내력을 고하자 왕비는 멀리 조나라로 시집을 보냈던 공주가 혼례도 못하고 죽어서 돌아왔던 사실을 말하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왕비는 그가 도굴범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서, 사람을 보내 진녀의 무덤을 파보게 하였다.

관을 열어보니 원래 묻혀있던 부장품중에서 금침 하나만 없어지고, 나머지는 그대로였다.

망녀의 옷을 풀어보니, 그녀는 마치 살아있는 듯 기쁨에 가득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부부의 정을 나눈 흔적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제서야
진 왕비는 도탁의 말을 믿고, 탄식하며 말했다.

"나의 딸은 선녀가 되었구료. 죽은 지 23년이나 되었는데도, 이승의 사람과 내왕을 할 수 있으니 말이오.
더구나 부부의 정까지 나눴으니, 그대야말로 진정한 나의 사위라오."

왕비는 궁궐주변에 저택을 마련해주고 그를 부마도위로 임명하였다.

부마는 원래 군주가 타는 부거를 끄는 말이라는 뜻이며 그 말을 맡아 보는 관리를 부마도위라고 하였는데 이 때부터 부마도위는 마차를 관리하는 직책이 아니라
군주가 사위에게 내리는 벼슬이 되었다고 한다.

부마도위를 줄여서 부마라고 하는데, 왕의 사위 또는 공주의 남편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중천왕이 사위를 들이면서 이 칭호를 준 것이 기록상 처음이다.

고려때는 고려의 왕이 원나라 황실의 부마가 된 경우가 있었는데 충렬왕부터 충정왕까지 6명이 앞에 "충"자를 붙이고 원나라의 사위국이 되기도 했다.

부마는 아닐지라도 처가 예쁘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을 한답니다.

코로나 시국이라도 사위 노릇은 잘 하고 있겠지요

♡ 역사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