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貴妃의 浴室
☆楊貴妃의 浴室☆
서양의 미인하면
클레오파트라를 연상하고
동양의 미인하면
양귀비를 연상한다.
하지만
양귀비가 미인이었다는 것은
역사의 수수께끼에 불과하다.
양귀비가 살았던 당대의
문헌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지만
절세의 미인으로 표현한
대목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정사(正史)인 "구당서"에 보면
야귀비의 용모에 대해
자질이 풍염(豐艶)하다고 씌어 있으며,
당대에 지어진
매비전(梅妃傳)에 보면
매비(梅妃)가 양귀비를 보고
비비(肥妃) 곧 살찐
종년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런 표현들로 미루어
살이 풍만하게 찌고 매력이
있었는지 모르나
절세의 미인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다.
唐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지은 시에도 농염(濃艶) 곧 곱고
예쁘다는 말이 고작이요
절세의 미인을
연상케 할 어떤 대목도 없다.
신화사(新華社) 통신이 보도한 바로는
양귀비의 욕실이 협서성
서안교외에서 발견 됐는데
별로 큰 욕실은 아니었다.
그 욕실은 서안화천궁의
복판에 옥연탕(玉蓮湯)이 있는데,
지하에서 솟은 온천물로
욕조를 채우고
옥(玉)으로 만든 고기와
용을 물속에 넣고
배를 띄우고 현종과
양귀비는 희롱하며 즐겼으며,
이 욕실에서
궁밖으로 흘러나간 물에는 이따금
보석이 떠나려 오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떼지어 지켜서 있다가
그 것을 줍고 했다 한다.
양귀비가 목욕하고 나면
그 물에 난향이 자욱했기로
그 물을 쟁취하여 향로에 담아
방안에 둠으로써
향을 즐겼는데,
이를 귀비향(貴妃香)이라 불렀다.
당나라 현종(玄宗)이
양귀비에 빠졌을 때 나이가
61세 양귀비는 26세였는데,
양귀비가
미인이라서가 아니라 늙은
현종의 변태성에 영리하게
영합됐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찬란한 욕실에서
두사람이 희롱하며 즐긴 것이
미인으로 표현돼
오늘에 대목으로
전해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 고전 문화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