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 영상글

꿈, 어떤 성우의 마지막 방송/박만엽 (낭송:무광)

청정지역 2018. 3. 22. 19:56




2017 제2회 윤동주 서시 문학상 해외작가상 추천 우수작
꿈, 어떤 성우의 마지막 방송 ~ 박만엽
그날따라 콧속으로 스며드는 
공기에 살기(殺氣)가 느껴졌으리라
꼭두새벽 초인종 소리와 함께
이웃을 깨우는 다급한 남자의 우렁찬 목소리 
반사적으로 건물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어떤 이는 피를 흘리며 죽는 길몽(吉夢)을 꾸고 산
복권이 들어있는 지갑이 눈앞에 삼삼했으리라
잠옷 바람으로 처음 마주하는 원룸 빌라의 이웃
서로 겸연쩍은 듯 저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方言)을 내뱉지만   
그 남자의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뉴스를 보고 이웃은 알았다
그가 처음으로 빠져나와 
119에 신고 한 것도 
원룸 21개의 초인종을 모두 누르며
나오라고 소리쳤다는 것도
그는 운 좋게 재빨리 찾은 삶의 희열을
독재자처럼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서서히 번지는 불길에 뛰어들어 
이웃 모두에게 새로운 삶의 자유를 주었다
그는 이웃을 살리기 위해
초인종의 날카로운 기계음보다 
더욱 또렷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생(生)의 마지막 방송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남자: 불이 난 원룸 빌라의 사람들을 모두 구하고 숨진, 성우가 꿈이였던 의인 안치범. 
(낭송:무광_이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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