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 영상글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낭독) : 무광

청정지역 2018. 4. 28. 19:46


고정희 시인 생가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두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되는 날
나를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 질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 했을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곳에도 부재중 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 불쑥 다가 왔다가
이내 바람 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첨부파일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