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100일동안 피고지는 백일초와 백일홍

청정지역 2018. 10. 2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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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일동안 피고지는 백일홍과 백일초 ◑


    백일홍(百日紅)은 원산지가 멕시코인데 한해살이 풀이지요 꽃이 100일 동안 피고진다 해서 백일초(百日草)라고도 불러요 백일홍은 추운 건 싫어해도 덥고 가문 날씨는 잘 견디는데 햇볕만 잘 들면 꿋꿋하게 버티며 오래동안 꽃을 피우지요 가꾸기도 쉽고, 빨간색, 주황색, 분홍색, 하얀색 꽃들이 알록달록 피니까 사람들이 길가나 꽃밭에 자주 심어 아주 친숙한 꽃이 되었어요 백일홍의 꽃말은 색깔별로 다른데 붉은색 백일홍 꽃말은 인연, 그리움이고 주황색 백일홍은 헌신이며 흰색 백일홍은 선한마음, 순결 이라 하지요 그리고 노란색 백일홍은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않겠다는 다짐'이라 하네요 백일홍은 높이 60∼90cm이고,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이며 잎자루가 없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털이 나서 거칠어요 꽃은 6∼10월에 피고 두화(頭花)는 긴 꽃줄기 끝에 1개씩 달리지요 꽃의 지름은 5∼15cm이고 빛깔은 녹색과 하늘색을 제외한 여러 가지가 있어요 또한 열매는 수과(식물 열매의 한 종류로 열매가 익어도 껍질이 갈라지지 않는 형태)로서 9월에 익고 씨로 번식하지요 그런데 백일동안 길게 피는 이 백일홍에도 아픈 전설이 있어요 옛날 동해 바닷가의 한 조그만 마을에 해마다 처녀를 제물로 삼아 제사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어요 처녀의 희생으로 마을의 재앙을 막고 고깃배가 무사할수 있다고 믿었지요 그러나 이 제물로 바쳐진 처녀를 잡아가는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귀신도 사람도 아닌 백년 묵은 구렁이었어요 그런데 이 마을에 서로 사랑하는 몽실 처녀와 바우 총각이 있었지요 그해 가을에 둘은 혼인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해의 제물로 몽실이 처녀가 뽑히고 말았어요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도 하고 도망갈 궁리도 해보았지만 정해진 운명을 거역할수가 없었지요 결국 바우는 구렁이를 죽이고 몽실이를 구해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바다로 떠나기로 했어요 바우는 구렁이와 싸우러 가기 전에 몽실이와 약속을 했지요 "만일 백일후에 내가 오지 않거나 돌아오는 배의 돛에 빨간 깃발이 꽂혀 있으면 내가 죽은 거니까 도망을 가고 흰 기를 꽂고 오면 구렁이를 처치한 거니까 마중해 달라"고 말하고는 바다로 떠났어요 그 후 100일이 되는 날까지 몽실이는 바닷가에 나가 매일 기도하면서 바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요 그러던 중 100일째 되는 날 드디어 멀리 배의 앞머리가 보였어요 반가움에 벌떡 일어나 달려나간 몽실이는 배가 가까이 오자 아연실색 너무 놀라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지요 배의 돛에는 빨간 깃발이 꽂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이윽고 배에서 내린 바우는 몽실이를 찾았으나 이미 죽은 후였지요 몽실이를 끌어안고 울부짖던 바우는 무심코 배 위 쪽을 바라 보았어요 그런데 그곳엔 흰 깃발에 빨간 피가 물든 채로 꽂혀 있었어요 구렁이를 죽인 기쁨에 들떠서 구렁이 피가 깃발에 묻은 줄도 모르고 한시바삐 기쁜 소식을 알려야겠다고 그냥 달려왔던 때문이었지요 몽실이는 이 피 묻은 깃발을 보고 바우가 죽은 줄 알고 크게 놀라 죽어던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과 바우는 몽실이를 양지바른 곳에 고이 장사지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예쁜 꽃이 붉게 피어나서는 백일 동안이나 피어 있기에 사람들이 이 꽃을 백일홍이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너무 안타깝고 슬픈 전설이지요? 그런데 백일홍에는 풀과 나무 두종류가 있어요 우리 정서에 스며있는 백일홍은 국화과에 속하는 초백일홍(草百日紅)이고 나무백일홍은 배롱나무를 일컷는 말이지요 풀과 나무 모두 100일동안 피고진다 하여 백일홍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헤깔리게 되어 최근에 원예학회에서는 배롱나무를 백일홍이라 하고 초화(草花)인 백일홍을 백일초로 정리하였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우리가 화단에 많이 심던 백일홍은 백일초(百日草)로 변경 되었지요 배롱나무는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지요 꽃이 한 번에 피고 지는 것이 아니고 여러 날에 걸쳐 번갈아 피고 져서 오랫동안 피어 있는 것처럼 보여 백일홍이라고 부르지요 그래서 백일홍의 소리가 변해서 "배롱"이 되었다는 설도 있어요 원산지는 중국 남부이고, 대한민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약 30여종이 분포하고 있지요 줄기를 간지럽히면 간지러운듯 가지가 흔들린다하여 "간지럼 나무"라고도 하지요 배롱나무는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고 빨리 성장하여 쉽게 키울수 있지만 내한성이 약해 주로 충청남도 이남에서만 잘 자라지요 그래서 수도권에서는 겨울에 짚 같은 것으로 나무줄기나 나무 전체를 감싸주어야 하지요 배롱나무의 다른 이름에는 목백일홍, 양반나무, 간질나무, 간지럼나무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양반나무는 이 나무가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월동이 어려울 정도로 추위에 약한데 그로 인해 봄에 싹도 늦게 나오는 데서 유래된 것이지요 간질나무나 간지럼나무는 간지럼을 잘 타는 나무라는 뜻으로 이 나무의 줄기를 손톱으로 긁으면 간지럼을 타는 듯 나무 전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제주도에서는 ‘저금타는낭’이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 간지럼 타는 나무라는 뜻이지요 일본에서는 '원숭이 미끄럼 나무'라고도 하는데 줄기가 원숭이도 미끄러워 떨어질 만큼 매끄럽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지요 중국에서는 자미화(紫微花)라고도 하는데 장안(長安)의 자미성(紫薇城)에 이 나무가 많기 때문이며 또 간지럼 타는 나무라는 뜻의 파양수(爬癢樹)라고도 부르지요 이 백일홍(배롱나무)에도 전설이 있는데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는 화지공원 안에 천년기념물 168호로 등록이 되어 있는 600살이 넘은 배롱나무 이야기지요 어느 바닷가 마을에 이무기가 살았는데 이 이무기가 마을의 처녀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고 고기를 잡지 못하게 하는 행패를 부렸어요 그 때 마을에 한 처녀가 제물이 되어야 하는 날 때마침 이 마을을 지나던 청년이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처녀대신 제물이 되어 이무기와 싸움을 벌였어요 준수한 청년은 이무기와 싸워 이겼지요 그러나 이 처녀를 구하고 돌아온 청년이 처녀의 아버지에게 "나는 이 나라의 왕자요! 아버지의 명령으로 지금 나라를 돌면서 백성들의 사정을 살피고 있소!! 내 돌아갔다가 100일 안에 반드시 돌아와서 처녀와 결혼을 하고 싶소!!! 그때까지 기다려 주시오!!" 하고 말하고 떠났어요 그 청년을 기다리다 지친 처녀는 결국 100일을 견디지 못하고 상사병으로 죽었고 그 무덤에 청년을 그리워 하는 마음에서 붉은 꽃이 피었는데 이 꽃이 백일홍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배롱나무는 절이나 무덤가에 많이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화지공원은 동래정씨들의 선조를 모시는 사당이 있어서 원래 정묘사라고 불리던 곳이지만 지금은 사당도 잘 정비하고 입구에 예식장도 만들어서 여러 모로 공원 조성이 되어 있지요 양정 하마정 사거리에서 부암동쪽으로 버스로 두 정거장 더 가며 되지요 옛부터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하여 10여일 밖게 못간다 했으나 백일홍은 100여일을 간다하여 많은 선비들이 좋아하던 꽃이지요 그래서 사육신의 한사람인 성삼문도 이꽃을 많이 좋아했다 하지요 성삼문은 세조의 명에 따라 능지처사를 당했는데 조선시대의 능지처사는 칼로 각 부위를 잘라내지 않고 각각의 부위를 수레에 매어 소를 달리게 하는 ‘거열형’으로 대신했어요 그래서 성삼문의 몸은 여섯갈래로 찢겨졌지요 성삼문과 함께 박팽년, 유응부, 이개, 하위지 등도 모두 처형되었어요 이때 성삼문의 아버지는 물론 세 동생과 네 아들도 모두 처형되었지요 성삼문은 죽었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노래 ‘이 몸이 죽어가서’는 아직도 많은이들이 즐겨 읖조리지요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까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흰 눈 세상에 가득 찰 때 홀로 푸르리라 ‘충’은 ‘치우치지 않는 마음’을 뜻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논어>에서 공자의 제자 증자가 스승의 사상을 ‘충서’(忠恕)로 요약했듯이 충은 신하가 임금에 대한 태도만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의미하지요 누구든 사람에 대한 가장 올바른 태도가 바로 충인것이지요 따라서 성삼문의 단종에 대한 태도는 자신의 올바른 마음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아요 성삼문의 태도는 단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일수도 있어요 증자가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을 돌아볼 때도 충을 강조했듯이 충은 성리학자들이 평생 실천한 삶의 태도였지요 반역죄로 죽은 성삼문의 묘는 서울 노량진 사육신 묘역에 있으나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도 있어요 이처럼 그의 묘가 두 곳에 있는 것은 거열형으로 시체를 온전히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사육신묘는 성삼문, 박팽년, 이개, 유응부만 묻혔으나 1977~1978년 사육신묘역 정화사업때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가묘도 만들었어요 훗날 숙종은 1691년(숙종 17년) 사육신의 관직과 관작을 복구하면서 노량진 사당에 ‘민절’(愍節)이라는 사액을 내렸지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위치한 육신사에도 사육신을 모시고 있어요 육신사는 처음에 박팽년만 모시다가 증손자 박계창이 증조부 제삿날에 사육신이 사당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의 다섯 분도 함께 모셨지요 성삼문의 또 하나의 묘가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있는 것은 성삼문의 시체 중 일부를 이곳에 묻었기 때문이지요 성삼문은 아래 ‘백일홍’(百日紅) 시처럼 배롱나무를 무척 사랑했어요 지난 저녁 꽃 한 송이 떨어지고(昨夕一花衰) 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어서(今朝一花開)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相看一百日) 너를 대하여 좋게 한잔하리라(對爾好衡盃) 성삼문이 사랑한 백일홍은 우리말로 배롱나무이지요 성삼문은 백일홍의 꽃이 한 송이마다 백일 동안 피는 것이 아니라 한 송이가 피고 지고를 반복하면서 백일 동안 계있었다는 것은 이 나무가 자신의 인생철학과 닮았기 때문 아닐까요? 성삼문이 배롱나무와 백일 동안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무의 꽃이 붉었기 때문이지요 배롱나무의 붉은 꽃은 바로 성삼문의 단종을 향한 마음 그 일편단심(一片丹心)이 아닐런지요? -* (일송) *-







    ▲ 너무도 친숙한 백일홍(백일초) ...









    ▲ 여러종류의 백일홍(배롱나무) ...





    ▲ 부산 정묘사에 있는 600년 묵은 천연기념물 백일홍(배롱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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