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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태운 차가 옛날 고려장 시절 지게처럼 느껴진다

청정지역 2013. 5. 9. 11:02

 

어머니를 태운 차가 옛날 고려장 시절 지게처럼 느껴진다

 

 

 어버이날을 앞둔 휴일, 아들은 차를 몰고 어머니 계신 곳으로 간다.

그동안 벼르던 모자(母子)의 여행을 오늘에야말로 실행에 옮길 작정이다.

 

찾아뵐 때마다 모친은 비록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50여 년이나 산 C시를 고향처럼 그리워했다.

옆집에 살던 동갑내기 친구를 한번 더 보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도 했다.

다리가 불편하고 가끔 정신이 들락거려 혼자서는 무리였다.

  뒷좌석에 모친을 태우고 출발. “C시로 영숙이 어머니 뵈러 간다”고 하니 흐뭇한 표정이 역력하다.

저렇게도 좋아하시는데. 불과 두 시간 거리인데 다짐만 거듭하다 이렇게 늦어지다니.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그나마 빠를 때라고 자위하며 미안한 마음을 누른다.

 “난 이맘때 나뭇잎 색깔이 제일 좋더라.” 차창 밖을 응시하던 모친이 툭 한마디 한다.

“여름 것은 너무 진하고, 가을엔 시들어 애닯고….” 뒷좌석에서 슬슬 이야기 보따리가 풀린다.

“그때 말이다.

온 식구가 연탄가스 맡았던 날. 영숙이 엄마가 방문 다 열고, 동치미 국물 먹이고,

택시 부르지 않았으면 우리 식구는 다 죽었다.”

“준철이 엄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안됐다.

그 곱던 이가 준철이 아버지 간 뒤로 막걸리에 쩔어 살지 않았니. 결국 제 명대로 못 가고.”

 아들도 다 아는 에피소드를 말해주던 모친이 10여 분 뒤 같은 말을 또 한다.

“그때 말이다. 온 식구가 연탄가스 맡았던 날….

 

” 자식은 얼마 전 읽은 책의 한 대목을 떠올린다.

“까치 한 마리가 뜰로 날아왔습니다. 치매기가 있는 백발노인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까치요.’ 아버지가 조금 있다 다시 물었습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까치라니까요!’ …옆에서 듣던 어머니가 한숨을 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범아, 너는 어렸을 때 저게 무슨 새냐고 백 번도 더 물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까치란다, 까치란다,

몇 번이고 대답하시면서 말하는 네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지.

그래서 네가 말을 배울 수 있었던 거다.’


 이른 오후의 C시. 85세 동갑내기 두 여인은 만나자마자 손을 부여잡고 운다.

아들은 밖으로 나와 고향마을을 거닐다 두어 시간 뒤 다시 어머니를 모시러 온다.

돌아오는 길, 모친은 거의 말이 없다.

올림픽대로를 지날 적에 창밖을 보다 한마디 던진다.

“세상 좋아졌다지만, 그래도 나는 그때가 좋았다. 젊었으니까.”

 요양원이 가까워지면서 아들은 문득 내가 모는 이 차가 저 옛날 고려장(高麗葬) 시절에

자식이 멘 지게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없이 깊은 숲 속으로 향하던 지게. 너무 마르고 쇠약해진 모친 때문에 사람 실린 느낌조차 들지 않던 지게.

                    중앙일보 노 재 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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