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부의 마지막 사랑
낭독/무광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병을 그대로 이어받은 한 남자
그리고 그를 9년 8개월전에 보고 만나고 결혼하고
그와의 사이에 어여쁜 아이들을 둔 한 여자.
여자는 수녀가 되려했던 자기에게
사랑한다는것이 얼마나 좋은것이고 아름다운것인지
알게해준 남자가 바로 남편이라고 했다.
이들이 연년생 둘째를 가졌을 무렵,
대장암 진단으로 이미 한쪽 대장을 잘라낸 남자는
그 후 기적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몇년이 지나,
다시 발병한 대장암은 남은 한쪽마져 절제하는
수술을 하게 하고야 만다.
그 이후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남자.
아직 그는 그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굳게 믿고있다.
아직은 밝게 웃고 있는 가족의 오붓한 모습.
대장절제도 했는데
더이상 있을 수 없다는 남자의 말에
남자는 아내와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가족들과 몇개월만에 가지는
너무나 평범한 생활을 하루도 못이긴채
고통에 못이겨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다.
검사결과가 나왔다.
병원진은 아내에게 청천벽력같은 진단결과를 들려준다.
올해를 넘기긴 힘들다는 말...
암이 온 내장에 퍼졌다는 말....
암치료도 필요치 않고
그냥 환자의 몸을 편하게 해주자라고 한다.
아내는 무어라 할말이 없다.
굵은 눈물만이 흐를뿐이다.
그가 너무 불쌍하다.
어릴적부터 엄마없이 자라온 그가
그리고 그없이 자라나게 될 아이들이 또 불쌍하다.
무엇보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가는 남편이 너무나 불쌍하다..
아내는 남편에게 그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한다.
아내는 더이상 해줄것이 없다.
단지 그녀의 사랑하는 남편에게
그간 못했던 사랑의 표현밖에 할것이 없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버텨가고 있다.
아내는 아내대로 혼자의 힘으로
4가족을 부양하며 병원을 오간다.
힘든 내색을 감추고...
밝은 엄마와 아내로...
하지만...남자는 변해가는 몸을 이겨내기에도
역부족할만큼 증세는 자꾸만 악화된다.
몇천 그램의 모르핀을 투약해서
아내의 이름도 쓰기 힘들 정도로 정신력이 희미해져간다.
이제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고
배변도 혼자 힘으로 볼 수 없다.
이미 겉으로 보기에도
그는 너무나 늙고 힘없고 정신이 없어보인다.
남자는 더해가는 고통속에
잘될꺼야 맘먹다가도
하루가 틀려져 가는 고통속에 스스로 위축되어간다.
그런 남편을 옆에서
보고만 있어야 하는 아내는 해줄것이 없다.
단지 위로와 포옹과 조용한 울음만...
하루 이틀...얼마 남지 않은 남편의 시한부인생.
결국. 그의 아내는 시동생의 힘을 빌려
시한부 삶을 털어 놓는다.
아무말도 할 수 없는 남자.
눈물 만이... 흐를 뿐...
남자는 호스피스환자에게 시술되는
신경절제수술을 한다.
그 시술은 자신의 상태를 혼자만 모를때 거부했던 시술.
이제 그것을 해야만 그나마 견딜수가 있는것이다.
그 시술의 힘으로 남자는
그나마 남겨진 자신의 마지막 일생을 살아간다.
남자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역할을 하기에 너무나 기간이 짧다.
아내는 아내대로 엄마로서 남겨진 역할보다
불쌍한 남자가 미안해할까 그에 더욱 아프다.
아이들에게 남겨줄 비디오를 찍는다.
아이들의 사진을 다시금 꺼내어 본다.
아이들에게 말하는것도 이제 쉽지 않다.
예전같지 않은 모습이
그도 아내도 내색하지 않지만 너무나 슬프다.
그는 아내의 눈을 맞추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내는 그런 남편이 너무나 불쌍하다.
차차 아이들도 아빠의
얼마남지 않은 죽음을 본능적으로 슬퍼하게 된다.
대장암을 젤 처음 수술했을 때 가졌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 딸아이의 울음에
가슴이 찢어지는것만 같다.
몇 일전까지만 해도
집에 아빠가 왔다고 발을 씻겨주던 딸아이.
손이 아빠만큼 컸다고
으쓱해하던 아들의 웃음이 먼 일만 같다.
남자는 미안해 사랑해를 끊임없이 말한다.
그것밖에 할말이 없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결국 일인실로 옮겨온 남자와 아내.
남자는 이미 눈을 뜰 수가 없다.
숨쉬기가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손을 잡고 있다.
손을 꼭 모아잡고 몇십년은 늙어버린 남편에게
아내는 퉁퉁 분 눈으로 마지막 부탁을 해본다.
제발 아이들이 올때까지만 참아달라고...
버텨달라고...
아이들은 아빠의 모습을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터뜨린다.
그런 아이들에게
혼자 가는 아빠에게 위로를 해드리라며
'고맙습니다. 사랑해요'를 일러주는 아내
아내는 홀로 먼길을 갈 남편도 불쌍하지만,
이제 남겨질 아이들을 위로해야 한다.
오열하는 아이들과 아내의 눈물짙은
사랑해 한마디에..
남자는 거친 호흡속에서도
끝내 눈물을 흘리고야 만다. 아아...
마지막.. 거친 호흡속에 이내 가늘어진 숨소리...
그의 숨이 조용해진 것을 확인한 순간...
허튼 소리 한 번하지않던
그녀의 입에서 헛 소리가 나고만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입맞춤 해준다.
그녀는 그렇게 마음에 구멍이 뚤리고 만다.
그렇게 그는 갔다.
아내의 따뜻한 손길에
머리가 쓰다듬어지는것을 느끼며..
아이들과 아내의 울음소리,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이 희미해짐을 느꼈을까.
얼마나 미안할까.
그들을 두고 가는 마음은 얼마나 힘들까........
그리고 몇개월후.
아이들은 엄마 힘들까봐 그런 것일까...
밝고 힘차보인다.
아직도 남편의 문자와 사진들을 지우지못해..
전화기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는 아내.
병원에서 혼자 직장생활하랴 집안일하랴, 아이들보랴,
병원에 와서 자신을 보랴 힘들었을 아내에게
그가 해줄것은 힘내라는 그리고 사랑한다는 문자밖에...
어색한 웃음으로 눈물을 모면해 보려하지만,
아직 아내의 가슴속은 그의 모습으로 꽉 차있다.
그 문자를 볼때마다 힘이 나고 그 자체가 힘이 되어준다
십년째 맞는 결혼기념일날 남편의 묘 앞
외로워하지 말라며
따뜻한 한마디로 시작했던 아내는..
어느 누구에게도 쉬 보이지 못했던
울음을 또 터뜨리고 만다.
"자기야 사랑한다...."
아내가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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