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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各自圖生) 시대가 열렸다

청정지역 2022. 2. 9. 18:47

 




“각자도생(各自圖生) 시대가 열렸다.”


※ 도생(圖生): 살아 나가기를 꾀함.


방역 당국이 지난 7일 ‘확진자 격리 감시 폐지’와
‘고위험군만 재택 치료 제공’을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대책을 발표하자 시민들이 보인 반응이다.

앞으로 확진자는 본인이 알아서 7일간 격리하면 된다
고 한다.
무증상·경증 확진자는 보건소에서 제공하는 치료 키트를 받을 수 없다.
하루 한 번 “몸 상태는 어떠신가요” 하고 묻는 의료 기관 전화도 오지 않는다.
아프면 직접 동네 병원에 전화해 ‘감기약 좀 달라’고 해야 하고,
못 견디겠으면 직접 119를 불러야 한다.
요약하면,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오미크론 변이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폭증하며 편의점 자가진단키트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일부 편의점에서 발주까지 정지됐다.
실제 1만 명대를 기록하던 지난달 25일부터 10일간 편의점에서
자가진단키트와 방역물품 판매량은 크게 증가했다.
사진은 8일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구매하는 시민. 2022.2.8 /연합뉴스



방역 당국이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은 당장 이달 말 확진자가
최대 20만명까지 전망되는 위기 상황이기 때문이다. 종전의 촘촘한
‘K방역’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를 관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한 달 전부터 의료계에서는 “지금 방역 방식대로 가면 전 국민의 절반이
보건소 공무원이 돼도 확진자 관리가 안 될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결국 ‘K방역’은 속수무책으로 늘어나는 확진자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런데 막상 확진자들 사이에서는
“그리 새로운 대책이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미 재택 치료 현장에선 한참 전부터 ‘각자도생 방역’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확진 통보를 받고도 4일 내내 뭘 어떻게 하라는 연락을 못 받았다는 사람,
치료 키트가 격리 해제일에야 도착했다는 확진자,
자가 격리 감시 앱을 설치하라는 연락을 격리 해제 전날 받았다는 사람,
격리 해제일이 됐는데 어느 누구도 연락을 안 한다는 사람까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몇 주 전부터 사연이 넘쳤다.

엄마들은 진작부터 감기약과 해열제로 구성된 ‘코로나 상비약’을 사들이고,
사진 찍어 서로 인증하며 정보를 나눴다. 어떤 약국은
‘코로나 상비약’을 일찌감치 꾸러미로 판매해 명소가 됐다.
이쯤 되면 방역 당국의 ‘각자도생 방역 선언’은 뒷북인 셈이다.


사실 확진자 4만명, 재택 치료자 20만명이
매일 나오는 상황에 정부가 다 해줄 순 없는 노릇이다.

무증상·경증 확진자 처지에서도 오지도 않는
보건소 전화를 마냥 기다리며 불안에 떠느니,
차라리 직접 병원에 전화해서 약 처방받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필요한 상비 물품을 사두는 게 낫다.

오미크론 방역은 ‘각자도생’이지만,
건강한 일반 국민은 조금씩 혜택을
내려놓고 양보하는 방역이기도 하다.
다 똑같은 조치를 받으면 결과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은 놓치거나 혜택이 줄어들게 된다.

‘각자도생 방역’이 돌봐주는 이 없는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고령인 사람에게
더 즉각적이고 적절한 치료 기회가 돌아가는
‘공생 방역’의 길이 됐으면 한다.

당국도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하고 철저한
고위험군 방역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 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