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 좋은글

아버지의 유산

청정지역 2022. 3. 19. 16:36




아버지의 유산.



옛날 초등학교는
한 반에 70명이 넘었고 급식도 없었다.
점심은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공부 하던 자기 책상에서 먹어야 했다.


그 때 내 짝은 도시락을
항상 가저 오지 않고 도시락이 없는
학생에게 나누어 주는
옥수수빵을 받아 먹고 있었다.


그렇게 깡 마른 내짝은
그 빵마져 다 먹지 않고 남겨서 가방에
넣는 것을 자주 보았다.


내짝은 연필이나 공책이
없을 때가 많았고 그나마 그림도구는
아예 가져 오지도 않았다.


나는
그래서 반 쯤 쓴 크레용이나
도화지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짝이
빵을 받아 왔는데 그 냄새가 너무 좋아서
내 도시락과 바꾸어 먹자고 했다.


나는 옥수수빵을 맛있게 먹었고
내 짝도 도시락을 깨끗이 비우자
내가 앞으로 계속 바꾸어
먹자고 했더니 좋아했다.


나는 그때 밥보다 훨씬
빵을 좋아했고 그 일을
아버지께 말했더니 '밥을 많이 담아가라'고
하면서 웃어 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내 짝은 밥을 반 정도만 먹고 가져온
빈 도시락에 담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그런 저런일을
미주알 고주알 했더니 아버지가 내짝
어디 사느냐고 물었으나
나는 몰랐다.


그런 일이 되풀이 되던 어느 날,
하교길에 짝과 같이 나오는데
아버지가 오셔
'나랑 이 아이 집에 가보자'고 하셨다.


내 짝은 빵을 바꾸어 먹은 일로
야단을 칠 줄 알고 무조건 잘 못 했다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는
허리를 굽혀 한참을 다독여 주신다음
그의 집으로 같이 갔다.


산 등성이의 동네는
온통 루핑과 스레트 지붕의 허름한
판자집들이었고 나는
처음 가보는 이상한 거리였다.


아버지 혼자 그 집에
들어 들어갔다가 한 참 만에 나오신 후
나의 손을 잡고 말없이 집에 도착했다.


"짝한테 잘 해 주어라.
참으로 착한 아이더라.


저도 배가 고플텐데
도시락을 반 남겨서 집에 가져가
아픈 아버지 죽을
끓여 드린 거란다.


겨우 겨우 먹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많이 아파,
집에 먹을 것이 없다더라. "


아버지가 그 집에
무엇을 해 주었는지 나는 몰랐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시장에서 고정으로 장사를 하게 되었고
집으로 쌀가마니가 통째로 왔다고
내짝이 울면서 말해 주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말이 없었고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엄마가 알면 죽어라
장사 해서 남 다 퍼준다고 대들 것이고
아버지는 이런 말로 다툼이
생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가지면 더 행복하니?
쌓아 둔 만큼 행복하니?
조금만 나누어 주면 신간이 편한데~~.
그게 더 좋지 않아 ?"


우리집은 부자가 아니다.
때로는 아버지의 적선이
지나첬다는 것도 안다.


<조금만 나누어 주면 신간이 편하다...>


그 뜻을 나는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가는 듯 하다.


나는 두 개 가지고 있다고
행복이 두 배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후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늘 내게 말했다.


"집에 찾아오는 사람을
빈 손으로 보내지 않아도
재산이 줄지는 않는다."


<조금씩 나눈다고
재산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 아버지의 유산이
지금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재산이 되어가고 있다.



♡ 감동 좋은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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