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시 / 도종환 피었던 꽃이 어느새 지고 있습니다 화사하게 하늘을 수 놓았던 꽃들이 지난밤 비에 소리 없이 떨어져 하얗게 땅을 덮습니다 꽃그늘에 붐비던 사람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화사한 꽃잎 옆에 몰려오던 사람들은 제각기 화사한 기억 속에 묻혀 돌아가고 아름답던 꽃잎 비에 진 뒤 마음 없이 부는 바람만 차갑습니다 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살아가야 할 날들만 길고 멉니다 꽃 한송이 사랑하려거든 그대여 생성과 소멸, 존재와 부재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아름다움만 사랑하지 말고 아름다움 지고 난 뒤의 정적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올해도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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