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일본이 대마도를 반환해야 하는 이유(2)

청정지역 2017. 1. 18. 18:04

              


▲ 부산에서 1시간30분 거리인 우리의 영토 대마도 ~~

    ♣ 대마도(對馬島)를 반환해야 하는 이유♣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영토이니 돌려달라고 요구한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그 누구도 그런 요구를 한적이 없어요 대마도(對馬島)는 본시 우리나라 마한(馬韓)과 마주보고 있다하여 대마도(對馬島)라 하였는데 일본이 350년전 무력으로 점령하여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땅이지요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 건국 3일후 이승만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일본에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한다 대마도는 상도와 하도(上島及下島)의 두섬(二島)로 되어 있으며 한일 양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영토인데 삼백 오십년전 일본이 탈취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9년 1월 8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대일 배상문제는 임진왜란 시부터 기산(起算)하여야 한다 대마도는 별개로 하여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대마도가 우리 섬이라는 것은 더 말할것도 없거니와 350년전 일본인들이 그 섬에 침입하자 도민들은 민병을 일으켜 일본인과 싸웠던 것이다 그 역사적 증거는 도민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마도의 여러곳에 건립했던 비석들이 있으며 이 비석을 일본인들이 뽑아다가 동경박물관에 갖다 둔 것으로도 넉넉히 알수 있을 것이다. 그 비석도 찾아올 생각이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또, 1949년 12월 31일 대통령 연말기자회견에서 “대마도는 우리의 실지(失地)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마도문제는 대일 강화회의 석상에서 해결할수 있으며 일본인이 아무리 주장해도 역사는 어쩔수 없을 것이다.”고 거듭 주장 하였지요 당시 이승만은 일본으로부터의 대마도 반환에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었고 중국 여론도 이를 지지하고 있었으며 중국거주 우리 동포들이 이를 지원하는 대규모 시위도 하였어요 다급해진 일본 수상이 일본 천황에게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과 관련 대마도 상황을 보고하는 와중에 대마도에 한국인이 실제 2천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은 언론기사가 보도 되기도 하였지요 그러자 대내외에서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하는 것이 맞다는 기류가 팽배 했어요 그래서 우리국민들은 1950년을 대마도를 찾아오는 제2의 광복의 해가 될것이라는 기대에 들떠있었어요 불과 6개월뒤 불어닥칠 지옥과도 같은 6.25 전쟁을 까맣게 모르고… 대망의 1950년은 밝았지만 새해벽두부터 우울한 소식이 들려 왔어요 1950년 1월 12일 미국의 국무장관 애치슨에 의해 미국의 대 소련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국이 제외됨을 공표하는 이른바 "애치슨 라인"이 발표되었지요 사실 이것이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게하는 동기부여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러자 일본은 5일 후인 1950년 1월 17일 당시 500만 달러를 투입한 대마도 개발계획을 발표했어요 이승만의 대마도 반환 요구에 연초부터 강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이었지요 그런 와중에 마침내 1950년6월25일 그 처참했던 민족상쟁은 시작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까지 쫏겨가는 신세가 되었지요 ‘6.25전쟁이 일본을 살렸다’고 하지요 이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일본이 재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주장으로부터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는 의미도 되었지요 그러나 맥아다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은 호전되고 서울이 수복되자 다시금 대마도 반환에 눈을 돌리기 시작 했어요 1951년 3월 유엔사무총장 트리그브(Trigve)로부터 휴전이야기가 나오자마자 1951년 3월 일본은 독도를 국제 문제로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독도주변에서 어업활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했지요 이는 휴전이 되면 이승만 대통령이 대마도 반환문제를 다시 주장할 것에 대비하여 치밀하게 성동격서(聲東擊西)격으로 독도를 물고 늘어졌던 것이지요 이에 대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요 그러면서 1952년 1월 18일 대한민국 국무원 고시 제14호 ‘인접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으로 맞받아 첬어요 우선 평화선을 설정해서 독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독도문제를 선 종결지으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 평화선 안에 아쉽게도 대마도는 빠져 있었어요 이와 관련, 지금도 일부에서는 ‘이승만 라인(평화선)’은 이승만 대통령이 대마도 반환요구를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이 선언에는 독도는 포함되었지만 대마도를 우리 수역에서 제외 시킨것은 대마도가 일본령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질타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당시는 전쟁 중이었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민족생존이 우선이던 시기였어요 전쟁 중 일본의 독도 침범에 따른 어쩔수없는 선 조치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대통령 선언서를 자세히 보면 거기에 의미로운 내용이 있어요 1952년 1월 18일 발표한 ‘대통령선언서’ 3항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음을 알아야 하지요 여기서 대마도 반환을 위한 이승만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음을 알수 있어요 ◇1952년, "이승만 라인(平和線)-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 3항 :대한민국정부는 이로써 대한민국정부의 관할권과 지배권에 있는 상술한 해양의 상하 및 내에 존재하는 자연자원 및 재부를 감독 하며, 또 보호할 수역을 한정할 좌에 명시된 경계선을 선언하며 또 유지한다. 특히 이 경계선은 장래에 규명될 새로운 발견, 연구, 또는 권익의 출현에 인하여 발생하는 신 정세에 맞추어 수정할수 있음을 겸하여 선언한다. 이 얼마나 명쾌한 선언인가? 그리고 그 당시 우리정부는 일본이 1861년 2월과 1862년 4월 미국과 영국의 대사 등 당시 열강의 대사들에게 제시한 ‘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 판’을 통하여 울릉도, 독도뿐 아니라 대마도도 우리영토임을 국제적으로 공인하였음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단순한 반환이 아닌 우리민족의 실지회복 차원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지요 ▲ 1786년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제작한 <삼국접양지도> 원본사진. 대마도는 조선반도와 같은 노란색. 일본은 녹색이지요 ...


    국제법상 영토취득 권원에는 선점(Occupation), 공인(Recognition), 시효(Prescription), 실효적 지배 등이 있는데 19세기까지 한.일 양국은 공히 선점(Occupation)에 대한 증거는 모두 보유하고 있다고 볼수 있어요 그러나 1868년 이후 일본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실효적지배 6년 전인 1862년 일본 스스로 제 외국에 자기네 영토임을 주장하여 국제사회로 부터 공인(Recognition)받은 한장의 지도가 있었어요 그것이 바로 위에 있는 ‘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 판’ 지도 이지요 그런데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대마도는 국제조약에 일본령으로 인정되었지만 여기서 '오가사와라 군도'는 일본령에서 누락되어 미국령이 되고 말았어요 그러자 일본은 불야불야 오가사와라 군도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묵살되자 마지막으로 국제적으로 공인된 확실한 물증이 있다며 (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 지도를 제시하였지요 이 물증을 받아본 미국은 어쩔수 없이 1862년의 국제 합의(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를 존중하고 이에따라 국제적 신의(Friendship)에 입각하여 지금부터 49년 전인 1968년 '오가사와라 군도'를 일본에 조건없이 반환하였지요 미국이 오가사와라 군도가 일본 영토임이 옳다고 판단하게된 동기는 그 지도에 오가사와라 군도가 일본 영토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일본도 동 조약에서 우리영토로부터 누락된 대마도를 1862년 합의(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를 존중하여 69년전 반환을 요구한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에 따라 조건없이 즉각 반환하는 것이 국제조약과 국제적 신의에 합당한 것이 아닌가요? 바로 그 지도에 독도와 대마도가 엄연히 한국 영토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 원본(위쪽지도) 1786년 일본인 하야시시헤이(林子平)이 만든 <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 대마도가 한반도과 같은 노란색 이지요 변조품(아래쪽지도) 대마도 녹색으로 변조되어 있어요 1968년대 일본이 노란색 대마도를 일본처럼 녹색으로 변조하여 각국에 배포한 지도. (사진은 일본 호사카 교수가 제시한 복사본) 그러다 보니 일본은 자기 당착에 빠지게 된 것이지요 자기꾀에 자기가 빠졌다고나 할까요? '오가사와라 군도'를 되찾아 오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보니 우리나라와의 영토문제를 좌시한 것이지요 일본은 오메불망 '오가사와라 군도'를 되찾아 오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와 영토문제에 있어서 크게 당황하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간악한 일본은 불야 불야 자신들이 미국에 제시한 <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지도를 변조하고 날조 하여 각국에 배포하기 시작 했어요 (위의 변조된지도사진) 그러나 역사는 변조하고 날조한다고 변색되는 것이 아니지요 엄연히 <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 원본이 살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삼국접양도 프랑스어 판 원본’이 극동지역에 주는 지정학적, 역사적 의미가 매우 높아진 것이지요 그 지도가 국제사회에서 처음으로 공인 받았고 이 공인받은 지도를 가지고 일본은 '오가사와라 군도를 미국으로 부터 반환받았기 때문에 일본은 꼼짝 못하고 인정할수 밖게 없는 꼴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지도는 한국과 일본의 영토구분에 있어서도 일본이 영토 팽창직전의 본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으므로 근세부터 현재까지 한.일간 영토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근거적인 자료가 되었지요 그러므로 일본은 대마도를 무조건 반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또한, 독도 문제도 이 자료에 근거하여 해결해야 되는 것이지요 다시말해 독도와 대마도는 이 지도에 분명히 우리 고유영토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일본이 실효적 지배하에 있는 독도를 자기영토라고 주장하고 분쟁화 하려는 의도는 대마도의 진실을 숨기기 위한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저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일본의 이러한 저의(底意)를 직시하고 이제라도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요구한 1948,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의 거듭된 주장이 유효하다고 선언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차원의 "대마도 반환"을 재차 촉구해야 하지요 명백한 우리영토인 대마도를 우리가 주장하지 않는 한 대마도는 우리영토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제 3편에서는 일본과의 영토문제에 있어 정부차원에서 소극적으로 대응 하는 이유와 앞으로 지향해야할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논해 보기로해요 그럼 제 3편에서 만나요 참고자료:(김상훈대령 :육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장 논문) -* (일송) *- ◇ 관련 자료들 ◇


    대마도는 일본 영토로 표기된 위조 지도.@자료사진


    일본 극우단체에서 제시하고 있는 모조 프랑스어판 삼국접양지도.@자료사진 ▲ 대마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된 위조 지도...


    ▲ 위 지도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만든 지도 일본이 제작한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시한 현존하는 최초의 지도라 하네요 고 이종학 초대박물관장이 기증한 이 지도는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돼 있는 것을 이 관장이 몰래 촬영한 것이라 하는군요...


    ▲ 조선팔도 총도 (1530년 제작)


    ▲ 위 지도는 대동여지전도(1860)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오른쪽 아래의 섬이 조선의 섬 대마도(쓰시마)이지요 잘 알다시피 대마도와 부산 간 거리는49km인 반면 대마도와 일본 규슈(九州)는 147km나 떨어져 있어요


    ▲ 대마도가 한국 땅임을 보여주고 있는 조선시대 지리지 '동여비고(東與備考)'의 지도


    ▲ 1400년대 제작 중국 고지도 여기에도 대마도는 조선땅이라 수록되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