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묘를 쓰다 생긴 이변

청정지역 2017. 3. 19. 20:47

묘를 쓰다 생긴 이변 (칠곡·송림사 전설)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며 바람마저 세차게 부는 추운 겨울 점심 무렵.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성한 얕은 산에 화려한 상여 하나가 다다랐다.

관이 내려지자 상주들의 곡성이 더욱 구슬퍼졌다.
땅을 치고 우는 사람, 관을 잡고 우는 사람 등
각양 각색으로 슬픔을 못이겨 하는데
오직 맏상주만은 전혀 슬픈 기색조차 보이질 않았다.

40세쯤 되어 보이는 그는 울기는 커녕 뭘 감시하는 듯
연신 사방을 둘러보며 두 눈을 번득였다.
마을 사람들과 일꾼들은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죄송합니다. 오늘 장례식에서는 떡 한 쪽, 술 한 잔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 새끼 한 뼘, 거적 한 장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 대신 일꾼 여러분에게는
장례식이 끝난 뒤 마을에 내려가 품삯을 곱으로 드리겠습니다.』

곡도 하지 않고 두리번거리기만 하던 맏상주가 당연히 나눠 먹어야 할
음식을 줄 수 없다는 까닭 모를 말을 하자 사람들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간밤이었다.
돌아가신 부친 옆에서 꼬박 이틀밤을 새운 그는 몹시 고단해 잠시 졸았다.
그때 그에게 선조인 듯한 백발의 노인 한 분이 다가와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맏상주는 명심해서 듣거라.
그대 부친의 묘자리는 길흉이 함께 앉았으니
잘하면 복을 누리고 잘못하면 패가망신할 것이니라.』

깜짝 놀란 그는 노인에게 매달렸다.

『어떻게 하면 길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내 말을 잘 듣고 명심해서 실천하면 되느니라.
좀 어렵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장례를 지낼 때 술 한 잔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남에게 줘서는 안되느니라. 만약 새끼줄 한 토막이라도
적선하게 되면 가세가 기울고 대가 끊길 것이며 이르는 대로 잘 지키면
가세가 번창할 것이다.』

단단히 일러주고 노인은 사라졌다.
맏상주는 아무에게도 이 사연을 공개할 수가 없었다.
행여 누가 음식을 먹을까, 새끼 한 토막이라도 집어갈까
열심히 주위를 살피기만 할 뿐이었다.

주린 배가 움켜쥐고 부지런히 삽질을 하는 일꾼들은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나 보다며 수군거렸다.
이때 걸인들 한 패가 몰려왔다.
그러나 떡 한 쪽 얻지 못한 패거리들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세상에 막걸리 한 잔 안주는 초상집은 생전 처음이구만.
어디 요놈의 집구석 잘사나 봐라. 에이 툇.』

그러나 맏상주는 못들은 척했다.
혹시 걸인들이 행패라도 놓으며 음식을 먹을까 염려된 그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음식을 모두 집으로 가져가게
하고는 머슴에게 다시 단단히 일렀다.
아무도 음식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고.

그 광경을 본 걸인들은 상소리를 퍼부으며 돌아갔다.
맏상주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허나 그는 다시 걱정이 시작됐다.

「집으로 보낸 음식을 누가 남은 음식인 줄 알고 퍼가거나 먹으면 어쩌나.」

그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내 품삯을 세곱 네곱, 아니 그 이상이라도 줄 테니
묘를 다 쓰거든 거적과 새끼줄, 지푸라기 하나 남지 않게
모조리 태워 주시오.』

『아무래도 말 못할 깊은 사연이 있으신가 본데, 염려 마십시오.
이왕 물 한 모금 안 먹고 시작한 일 부탁대로 잘해 드리리다.』

두번 세번 다짐받은 맏상주는 황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막 대문안으로 들어서는데 아낙들과 걸인들이 시비를 하고 있었다.
맏상주는 미친 듯 두 팔을 내저으며 사람들을 내몰았다.

한편 산에서는 묘가 다 되자 썩은 새끼 하나 남기지 않고
흩어진 새끼줄을 긁어모아 태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깡마른 거지 소년 하나가
달달 떨며 모닥불 곁으로 다가왔다.

『이 녀석아, 저리 비켜라.』
『에이 아저씨, 거지는 모닥불에 살이 찌는 걸 모르시는군요.』
『잔소리 말고 어서 저리 비켜!』

일꾼 한 사람이 맏상주 부탁이 생각나 거지아이를 떠밀었다.
아이는 맥없이 땅바닥에 나가 뒹굴었다. 소년은 앙앙 울어댔다.

『불쌍한 아이를 말로 쫓을 것이지 밀기는 왜 미나?』
『글쎄, 가엾군.』

거지 소년은 일꾼들이 달래주자 더 소리 높여 울더니
막 불이 붙으려는 거적 하나만 달라고 애원했다.

『추워 죽겠어요. 그 거적 태우지 말고 나 주세요, 아저씨.』
『안된다.』
『태우는 것보다 내가 덮으면 좋잖아요. 네? 아저씨』

마치 사시나무 떨 듯 몸을 움츠리며 사정하는 거지아이를 보다 못해
일꾼들은 맏상주와 약속을 저버린 채 인정을 베풀고 말았다.

『얘야, 이걸 갖고 사람들이 보지 않게 저 소나무 숲으로 빠져나가거라.
누가 보면 우린 큰일난다. 알았지?』
『네,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거적을 뒤집어 쓴 거지 소년은 쏜살같이 소나무 숲으로 달아났다.
일군들은 적선을 했다는 기분에서 흐뭇한 얼굴로 연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꽝」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바로 거지 소년이 사라진 소나무 숲에서 난 소리였다.

놀란 일꾼들이 소나무 숲으로 달려가 보니 참으로 묘한 정경이 생겼다.
거지아이는 간 곳이 없고 숲속에는 보지 못한 절 한 채가 솟아나 있는 것이 아닌가.
일꾼들은 겁을 먹고 마을로 내려왔다.

그 후 묘를 쓴 집안은 날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거지에게 거적을 준 일꾼들은
차차 형편이 피면서 큰 부자가 됐다.

마을 사람들은 소나무 숲에서 솟아난 절을 송림사라 불렀고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을 베풀 때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되새겨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살았다.

지금도 대구에서 안동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30리쯤 가면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 이르게 되는데 면소재지서 동쪽으로 5리쯤 가면
신라 내물왕 때 창건됐다는 송림사가 있다.

이 절에는 국보 전탑과 순금의 불감 등 보물이 있다.

ㅡ송림사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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