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홧김에 서방질 하다

청정지역 2018. 2. 24. 20:48



홧김에 서방질 하다

 



홍진사는 천하의 한량이다

기생집에 들어가면 치마 입은 것들은 홍진사를

서로 차지하려고 버선발로 흙마당에 뛰쳐나온다




여승도 양갓집 규수도 소리꾼도

홍진사 앞에서는 사족을 못 쓴다




 허나 홍진사에게도

생전 처음 난관의 벽이 가로막았다




이 마을 서당에 새로 부임해 온

젊은 훈장의 처가 자색이 보통이 아니다




얼굴 예쁘기로만 치면 기생들이 낫지만

훈장의 처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




얼음처럼 싸늘하고

깐 밤처럼 말끔한데다 매화처럼 이지적이다




훈장이 학동들에게 글을 가르칠 동안

훈장의 처는 수묵을 친다




 홍진사는 훈장 처에게 반해 훈

장님과 글한다는 핑계로




뻔질나게 서당을 들락거리며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멋모르는 훈장은 친구도 없이 외롭던 차에

좋은 술과 산해진미




안주를 싸 들고 오는

 홍진사가 반갑기만 한 것이다




어느 날 저녁엔 훈장과

술잔을 나누던 홍진사가 방구석에 쌓인




훈장 부인이 친

사군자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우와~ 이것은 걸작이요 하며 펼쳐 들자 집사람이

심심풀이 삼아 수묵을 친 졸작입니다




 훈장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홍진사는 제게 파십시오 하며 엽전 주머니를

놓고 한점을 둘둘 말아 품속에 넣었다




돈 받고 팔 만한 작품이 아니라며

마음에 든다면 그냥 가져가라 해도 막무가내다




홍진사가 가고 난 후에

훈장 부부는 주머니를 열어 보고 깜짝 놀랐다

거금 백냥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훈장이 학동들을 가르칠 때 훈장 부인이


돈주머니를 돌려주려고 홍진사를 찾아왔다





홍진사는 끝난 거래라며 돈주머니를 받지 않으려고


옥신각신하다가 훈장 부인의 손목을 잡았다


하초가 뻐근했지만 참았다





 며칠 후 밤에 훈장이

당숙모 문상하러 고향에 갔다는 걸 알고





모른 척 술병과

육회 안주를 들고 서당을 찾은 홍진사가


혼자 있는 훈장 부인의 손목을 잡았다





홱 손을 뿌리치자 내친 김에

그녀를 안고 쓰러져 옷고름을 풀었다





 그녀는 은장도를 꺼내 들고 자기 목에 칼끝을 겨눈 채


싸늘한 눈초리로 홍진사를 노려봤다





알겠소 알겠소 홍진사는 뒷걸음쳐 도망갔다


다시 며칠 후 학동 편에 서당에 오라는 훈장의 전갈을 받고





안 가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아

홍진사가 찾아가자 훈장이 반갑게 맞으며




고향에서 가져온 돔배기를 술과 함께 내놓았다


술상을 들고 온 훈장 부인은


태연하게 홍진사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보냈다





 두 사람이 과하게 술이

오르자 홍진사가 훈장 팔소매를 끌었다


저잣거리로 가 홍진사의 단골 기생집으로 갔다





홍진사가 기생 어미한테


몰래 엽전 꾸러미를 두둑이 찔러주고 귓속말을 했다





그날 밤 술자리를 끝내고

초승달처럼 예쁜 청매가 훈장을 잡아 금침이 깔린

뒷방으로 데려가 온갖 기교를 다 부려 혼을 빼놓았다





 삼일이 멀다 하고 홍진사와 훈장은 기생집을 찾았다


훈장이 청매에게 푹 빠져버린 것이다


이 아름다운 인생 카페는 회원님...(님)



 나무토막처럼

반듯하게 누워 숨소리조차 감추는 부인과 달리





청매는 촛불을 켜 놓은 채

홑치마만 입고 그것으로 훈장 얼굴을 덮었다





어느 날 밤 기생집에서 훈장과 술을 마시던 홍진사가


여봐라 훈장님이 혼자 왕림하시더라도


술값은 나에게 달아 놓아라





 훈장은 혼자서도 자고 갔다

장 부인은 투기를 내색하지 않았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날 밤 훈장이 혼자 기생집에 가


청매를 끼고 술을 마실 때 홍진사는 서당에 갔다





훈장 부인 옷고름을 풀었을 때


그녀는 은장도를 꺼내는 대신 눈을 감았다


                                                   홧김에 서방질을 했다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