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김에 서방질 하다
홍진사는 천하의 한량이다
기생집에 들어가면 치마 입은 것들은 홍진사를
서로 차지하려고 버선발로 흙마당에 뛰쳐나온다
여승도 양갓집 규수도 소리꾼도
홍진사 앞에서는 사족을 못 쓴다
허나 홍진사에게도
생전 처음 난관의 벽이 가로막았다
이 마을 서당에 새로 부임해 온
젊은 훈장의 처가 자색이 보통이 아니다
얼굴 예쁘기로만 치면 기생들이 낫지만
훈장의 처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
얼음처럼 싸늘하고
깐 밤처럼 말끔한데다 매화처럼 이지적이다
훈장이 학동들에게 글을 가르칠 동안
훈장의 처는 수묵을 친다
홍진사는 훈장 처에게 반해 훈
장님과 글한다는 핑계로
뻔질나게 서당을 들락거리며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멋모르는 훈장은 친구도 없이 외롭던 차에
좋은 술과 산해진미
안주를 싸 들고 오는
홍진사가 반갑기만 한 것이다
어느 날 저녁엔 훈장과
술잔을 나누던 홍진사가 방구석에 쌓인
훈장 부인이 친
사군자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우와~ 이것은 걸작이요 하며 펼쳐 들자 집사람이
심심풀이 삼아 수묵을 친 졸작입니다
훈장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홍진사는 제게 파십시오 하며 엽전 주머니를
놓고 한점을 둘둘 말아 품속에 넣었다
돈 받고 팔 만한 작품이 아니라며
마음에 든다면 그냥 가져가라 해도 막무가내다
홍진사가 가고 난 후에
훈장 부부는 주머니를 열어 보고 깜짝 놀랐다
거금 백냥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훈장이 학동들을 가르칠 때 훈장 부인이
돈주머니를 돌려주려고 홍진사를 찾아왔다
홍진사는 끝난 거래라며 돈주머니를 받지 않으려고
옥신각신하다가 훈장 부인의 손목을 잡았다
하초가 뻐근했지만 참았다
며칠 후 밤에 훈장이
당숙모 문상하러 고향에 갔다는 걸 알고
모른 척 술병과
육회 안주를 들고 서당을 찾은 홍진사가
혼자 있는 훈장 부인의 손목을 잡았다
홱 손을 뿌리치자 내친 김에
그녀를 안고 쓰러져 옷고름을 풀었다
그녀는 은장도를 꺼내 들고 자기 목에 칼끝을 겨눈 채
싸늘한 눈초리로 홍진사를 노려봤다
알겠소 알겠소 홍진사는 뒷걸음쳐 도망갔다
다시 며칠 후 학동 편에 서당에 오라는 훈장의 전갈을 받고
안 가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아
홍진사가 찾아가자 훈장이 반갑게 맞으며
고향에서 가져온 돔배기를 술과 함께 내놓았다
술상을 들고 온 훈장 부인은
태연하게 홍진사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보냈다
두 사람이 과하게 술이
오르자 홍진사가 훈장 팔소매를 끌었다
저잣거리로 가 홍진사의 단골 기생집으로 갔다
홍진사가 기생 어미한테
몰래 엽전 꾸러미를 두둑이 찔러주고 귓속말을 했다
그날 밤 술자리를 끝내고
초승달처럼 예쁜 청매가 훈장을 잡아 금침이 깔린
뒷방으로 데려가 온갖 기교를 다 부려 혼을 빼놓았다
삼일이 멀다 하고 홍진사와 훈장은 기생집을 찾았다
훈장이 청매에게 푹 빠져버린 것이다
나무토막처럼
반듯하게 누워 숨소리조차 감추는 부인과 달리
청매는 촛불을 켜 놓은 채
홑치마만 입고 그것으로 훈장 얼굴을 덮었다
어느 날 밤 기생집에서 훈장과 술을 마시던 홍진사가
여봐라 훈장님이 혼자 왕림하시더라도
술값은 나에게 달아 놓아라
훈장은 혼자서도 자고 갔다
장 부인은 투기를 내색하지 않았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날 밤 훈장이 혼자 기생집에 가
청매를 끼고 술을 마실 때 홍진사는 서당에 갔다
훈장 부인 옷고름을 풀었을 때
그녀는 은장도를 꺼내는 대신 눈을 감았다
홧김에 서방질을 했다 하더라
'명인 · 고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악은 반드시 뿌린대로 거둡니다 (0) | 2018.02.28 |
---|---|
그는 무엇 때문에 암행어사의 전설로 남았을까? (0) | 2018.02.24 |
어사 박문수 야담 (0) | 2018.02.17 |
황진이를 거처간 남정네들 (0) | 2018.02.17 |
세계 유명여성 17 인의 " 사랑 이야기" (0) | 2018.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