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강릉에도 능이 있어 강릉이라 하지요

청정지역 2018. 5. 4. 20:16


명주군왕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강릉에도 능이 있어 강릉이라 하지요 ◑


    우리나라 지명중에 왕릉이 있으므로 이를 따르는 지명이 많이 있어요 청량리 홍능을 비롯하여 남양주시 진접의 광능내 그리고 구리의 동구능 등등 아예 능 이름이 지명이름으로 바뀐곳도 있지요 이렇듯 능 이름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크나큰 자랑이자 이슈였지요 그런데 지난번 동계올림픽을 치룬 강릉에 대하여 그 지명의 유래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강릉(江陵)이라는 이름은 물 강(江)자에 언덕 릉(陵)자를 쓰는데 이는 강릉에도 왕능이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강릉에 왕능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적이 없지요 그런데 강릉(江陵)이라는 이름은 강(江)은 남대천(南大川)을 의미하고 릉(陵)은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를 말한다 하네요 그러니까 강릉김씨 시조 김주원(金周元)은 신라 김알지(金閼智)의 21세손으로 시중(侍中, 신라의 최고 관직) 겸 병부령(兵部令, 군권 총책임자)를 지냈어요 아버지는 각간(角干)을 지낸 김유정(金惟靖)이지요 태종무열왕의 셋째 아들인 문왕(文王)의 5세손이라고 하지요 785년 선덕여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군신회의에서 그를 왕으로 추대하기로 하였어요 그러나 그는 경주의 알천 북쪽에 살았는데 갑자기 큰 비가 내려 알천(경주 부근의 하천)을 건널수가 없어 입궐을 못하게 되자 이는 하늘의 뜻이라 여기며 즉위를 포기하였지요 이에 원성왕이 즉위하니 그가 내물왕의 12대손 김경신이지요 원성왕은 그에게 왕위에 오를것을 권유했으나 끝내 사양하고 강릉으로 은거하자 원성왕은 그의 겸손함에 감복하여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하였어요 그 당시에는 강릉을 명주(溟州)라 불렀지요 후손들은 그 뜻을 받들어 새로이 강릉을 본관으로 삼아 대를 이어 내려오게 되었는데 김주원의 아들 김헌창(金憲昌)은 헌덕왕 때 웅주(熊州)에서 난을 일으켜 국호를 ‘장안(長安)’이라 하고 한때 4주 3소경을 점령했으나 한달 만에 관군에게 패하여 웅주에서 자살하였어요 김순식(金順式)은 고려 건국 초 명주(溟州)장군으로 끝까지 항거하다 왕건에게 설득을 받고 협력하여 후백제 정벌에 공을 세웠지요 그 후 대광(大匡)에 오르고 왕씨 성을 하사 받았어요 그러나 조선 개국 후 왕씨가 탄압을 받자 원래 성인 김씨로 환원하였지요 세월이 흐르며 후손 중에 여럿이 벼슬자리에 나갔으나 조선조에 이르러 가문에 우뚝선 인물은 생육신의 하나였던 매월당 김시습이지요 그는 시조 김주원의 22세손으로 세살때 이미 시를 지었고 다섯살에는 <중용>과 <대학>을 통달해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세조1년 나이 21세때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던 중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해 읽던 책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방랑길에 올랐어요 세조 4년에 한양에 들렀던 그는 효령대군의 권고를 받아들여 마음을 바꿔 세조의 불경 언해 사업을 돕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후 <금오신화>와 <매월당집> <십현요해> 등의 명저를 남겼어요 강릉 김씨의 집성촌으로는 삼척시와 강릉시 일원, 철원군 민통선 인근, 충남 당진읍 경기도 동두천읍, 장단군, 전북 익산군이 있지요 오늘날 삼척과 강릉시 일원에 뿌리를 둔 강릉 김씨 후손 중에 두드러지는 인물로는 작고한 김진만 전 국회 부의장을 들수 있어요 지역의 대표적 기업인 동부그룹을 창업한 김 전 부의장은 기업 활동으로 지역 발전에 크게 공헌했을뿐 아니라 정계에 진출해 3,·4대 민의원과 6~10대 국회의원을 지냈지요 장남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고, 차남은 김택기 전 국회의원이지요 이들과 같은 기(起)자 항렬을 쓰는 문중 인물들만 해도 강릉 출신인 김갑기 동국대 국문과 교수 김명기 전 동해지방해양수산청장, 김무기 전 MBC·동양TV 방송국장, 김봉기 필리아M&C 사장 김순기 전 KBS 아트비전 사장, 김원기 전 MBC 라디오 기술위원 등을 포함해 삼척과 동해 등지에서 상당수가 활약하고 있지요 강릉은 본래 동예이자 남말갈, 예국(濊國)의 땅으로 하슬라(河瑟羅)라고 불었지요 고구려는 이곳을 하서량(河西良) 또는 하슬라(河瑟羅)라고 불리고 예국을 속국으로 삼아 이곳을 지배했어요 639년 신라가 이곳을 점령하고 (신라 선덕여왕 8) 소경(小京)으로 삼아 북빈경(北濱京)이라 하여 사신(仕臣)을 두었는데 658년(신라 태종 무열왕 5년) 무열왕이 "이곳은 말갈과 인접해 있다"라는 이유로 소경을 폐지하고 아슬라주를 만들어 도독을 파견하였으며 757년(경덕왕 16) 명주(溟州)로 개칭하였지요 조선시대 초에는 원양도(原襄道)·원춘도(原春道)라 칭하다가 세종 5년(1423) 강원도라 하고 춘천부와 강릉부로 나뉘었어요 이듬해 1부가 폐지되어 행정 중심을 춘천에 옮기고 강릉군만 관할하게 되었는데 1955년 강릉시로 개칭되었지요 ‘관동팔경’의 절경과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관동지방’은 대관령의 동쪽이라는 뜻이지요 이는 한반도의 중·동부 그러니까 강원도의 해안가를 가리키는 지명이라 할수 있어요 고려 성종때 전국을 10도로 나누면서 오늘의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관내도(關內道)라고 불렀고 강원도 지역은 관내도의 동편에 있다고 해서 '관동(關東)'이라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태백산맥 즉 대관령의 동쪽과 서쪽을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으로 나뉘어 불리지요 여기서 그 유명한 관동팔경을 열거하면 간성 청간정, 강릉 경포대, 고성 삼일포, 삼척 죽서루, 양양 낙산사, 울진 망양정, 통천 총석정 평해 월송정 이지요 이렇듯 빼어난 자연 경관이 수려하여 유유자적하던 많은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 중에서 특히 강릉지방에는 옛부터 큰 고을이 있어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지요 강릉이라는 이름은 고구려때에는 하서랑 또는 하슬라라고 불리웠고 신라시대때에는 명주라 했으며 고려시대때부터 강릉부로 부르기 시작 했어요 그리고 강원도의 이름도 강릉과 원주의 앞글자를 따서 '강원도'라 지어졌지요 이 때문인지 영동 지방에서는 예로부터 문(文)의 기운이 성했으며 율곡 이이 같은 대학자와 허균, 허난설헌 같은 문인들이 많이 배출되기도 하였어요 반면, 영서 지방은 백두대간의 험준한 산협을 끼고 철원, 춘천, 홍천, 횡성, 원주, 평창, 영월 등이 산간 지역에 흩어져 있지요 -* (일송) *-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삼왕길 204-15(보광리 285)번지에 위치한 명주군왕릉은 강릉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의 묘이지요 능향전(陵享殿)뒤쪽 언덕에 명주군왕능이 보이네요


    ▲ 강릉 경포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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