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자린고비 이야기

청정지역 2018. 5. 12. 20:52


▲ 자린고비 조륵의 유허비...

    ♣ 자린고비 이야기 ♣


    우리가 사용하는 말중에는 그 유래와 뜻과는 달리 심하게 왜곡되게 사용되는 말들이 있어요 그중 대표적인 말이 "자린고비"와 "싼게 비지떡" 이지요 오늘은 그 첫번째로 "자린고비"에 대하여 알아보고 다음에는 "싼게 비지떡"에 대하여 알아보기로해요 "자린고비" 라는 말은 돈이나 재물 따위를 쓰는데 있어 몹시 인색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요 이와 비슷한 말로는 '구두쇠, 수전노'가 있으며 그 외에도 '노랭이, 짠돌이, 굳짜, 가죽고리' 등의 별칭(別稱)이 있어요 그럼 먼저 "구두쇠"라는 어원을 살펴보면 구두쇠의 구두는 굳- 이라는 어간과 연관이 있다고 하지요 '돈이 굳다' 또는 '아끼다, 인색하다'라는 의미로 볼수 있으며 '-쇠'는 남성을 얕잡아 말할때 쓰는 말이라고 하지요 예를들면 하인의 이름으로 자주 쓰이는 돌쇠나 마당쇠, 변강쇠 등이 있어요 그러니까 굳- 과 -쇠가 만나 어우러지는 과정에서 중간에 -우-가 추가되어 굳 + 우 + 쇠가 되었고 여기에 연음현상으로 '구두쇠'가 되었다고 하네요 또 수전노는 한자 '수전노'(守錢奴)에서 나온 것인데 이는 "돈을 지키는 노예"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자린고비"에 대해서는 조선중기 학자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처음 소개 되었어요 충청도 충주(忠州)지방에 고비(高蜚)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지독하게 아껴서 큰 부자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그가 얼마나 아꼈는지 부모 제사때 지방(紙榜)을 쓰는 종이도 아까워 한번 쓴 지방에 기름을 먹여 계속 썼기 때문에 '절인'이라는 별칭이 이름앞에 붙었다 하지요 지금도 기름에 담그는 것을 '절인다'고 하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절인고비'라 부르게 되었고 이것이 변해서 '자린고비'가 된 것이라 하네요 또 일설에는 사람이 워낙 짜서 소금에 절인것 같다고 해서 '자린고비'가 되었다는 설도 있어요 그래서 자린은 절인다는 뜻이고 고비(高蜚)는 사람의 이름이지요 그러나 "자린고비"를 한문으로 쓰면 "玼吝考妣"라 하는데 자(王+此:옥티 자). 린(吝:아낄 린). 고(考:죽은 아버지 고). 비(女+比:죽은 어머니 비) 는 위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게 한문을 표기하고 있지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한한사전(漢韓辭典)에는 이 단어가 안 올라 있는데 뜻밖에도 국어사전에는 한자로 '자린고비(玼吝考妣)라고 한자를 달아 놓았지요 그러나 우리나라 어느 옛문헌에도 국어사전과 같은 한자는 나오지 않고 있어요 학계에서는 누가 국어사전을 만들당시 '자린고비' 네 글자가 고사성어(故事成語) 인줄 알고 한자로 비슷하게 뜻을 맞추려고 만들어 넣은것 같다고 말하고 있어요 돌아가신 아버님이 '고(考)' 어머님이 '비(女+比)'이지요 '자(王+此)'는 '옥에 티', '허물' 등의 뜻이 있고, '린(吝)'은 '더럽게 아낀다'는 뜻이지요 국어 사전에 나오는 한자 뜻을 가지고 해석하면 '허물이 될 정도로 돌아가신 부모님에 까지 아끼는 사람'이 되지요 그런데 이 내용은 우리가 알고있는 원래의 자린고비 뜻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요 아무튼 자린고비는 구두쇠와 조금씩 그 쓰임새가 다르지요 '자린고비'는 스스로에게 인색한 사람이지만 '구두쇠'는 남에게 인색한 사람이지요 대개 ‘자린고비’하면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쓸줄 모르는 천하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사람의 대명사로 여기고 있는데 실제로 충주 지방에 살았던 만석지기 조륵의 이야기는 자린고비 이면서도 만백성을 궁휼한 너무도 훌륭한 사람이었다 하지요 그러다 보니 이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퍼져 지금도 "자린고비" 유래가 아름답게 전해지고 있어요 그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에 살았다고 하는데 조선개국공신이신 충정공 조인옥 선조님의 11대손으로 한양조씨 16세조인 "자인고공 휘륵" 즉 조륵(1649~1714) 선생이 그 당사자 이지요 그는 평소에 근검절약으로 재산을 축적하여 만석꾼이 되었는데 그가 만석지기 재산을 모은 이야기가 재미 있어요 만석지기 조륵은 어쩌다가 고무신을 한컬레 사면 좀체 그 신발을 신지 않다가 명절이나 특별한날 출입이 있을 때만 신고 한번 신기만 하면 기어코 우물가에 가서 씻고 닦고 했는데 신어서 닳기보다는 닦아서 닳는 것이 더 많았다고 하지요 또 담뱃대에 담배를 재고 입에 담뱃대를 댈뿐 피우지 않으니 담배값이 들지 않았으며 제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부채를 펴고 있을망정 부채가 닳을까봐 흔들지 않고 얼굴을 흔들었지요 어느날 동네사람이 어찌하나 보려고 굴비 한마리를 조륵의 집 앞마당으로 던졌는데 이것을 한참 바라보던 조륵은 “밥도둑놈이 들어왔다!” 며 냉큼 집어 문밖으로 내 던졌어요 그런데 이런 조륵도 일년에 딱 한번 굴비 한마리를 사는데 다름 아닌 부친 제사상에 올려놓을 굴비였지요 굴비를 제사상에 쓰고 난후에는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숟가락 뜨고 굴비 한 번 처다보고 또 밥 한숟가락 뜨고 굴비한번 처다 보았지요 식구들이 어쩌다 두번 이상 보면 “얘, 너무 짜다. 물 먹어라.” 하고 호령하였어요 어느날인가 장모가 놀러왔다가 인절미가 조금 남은 것을 싸갔는데 나중에 알고는 기어코 쫓아가 다시 빼앗아 왔어요 이렇게 일전 한푼도 남에게 주거나 빌려주는 일이 없고 인정도 사정도 눈물도 없이 모으고 또 모으다 보니 근동에서는 둘도없는 만석지기 큰 부자가 되었지요 그러나 만석지기 조륵은 단 한번도 남의 것을 탐내거나 남의것을 그냥 가져오지 않았어요 오로지 자기 자신이 근검 절약하여 모은 재산이었지요 그렇게 자린고비로 방방곡곡 소문이 나던 어느 날 전라도에서 유명한 자린고비가 찾아와 “조선생, 나도 전라도 에서는 소문난 구두쇠인데 어느 정도 구두쇠여야 큰 부자가 될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어요 그러자 조륵은 전라도 구두쇠가 묻는 말에는 쓰다 달다 말도 없이 한참을 있다가 “그러면 나와 함께 나갑시다.” 하고는 전라도 구두쇠를 데리고 충주 탄금대로 갔지요 가는 길에 전라도 구두쇠는 신발을 아낀다고 교대로 한짝은 신고 한짝은 들고 가는데 조륵은 아예 신발 두짝을 모두 들고 갔어요 이것만 봐도 조륵이 한 등급 위인 자린고비가 분명했지요 조륵은 탄금대에 오르자 전라도 구두쇠에게 시퍼런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강물 쪽으로 뻗은 소나무가지에 매달리라고 하였어요 전라도 구두쇠는 영문을 몰랐지만 큰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소나무가지에 매달렸지요 그러자 조륵이 “이제 한쪽 손을 놓으시오.” 하였어요 그대로 따라했더니 한참 후에 “됐소. 이젠 한쪽 손도 마저 놓으시오.” 하였지요 전라도 구두쇠는 새퍼랗게 질리며 “아니 그러면 낭떨어지로 떨어져 저 강물에 빠져죽지 않습니까?” 하고 소리쳤어요 그곳은 몇십길 되는 낭떨어지기 인데다 밑에는 시퍼런 강물이 굽이치며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지요 전라도 구두쇠는 얼른 두손으로 나뭇가지를 붙잡으며 죽을상이 되어 벌벌 떨었어요 그제야 조륵은 “그러면 이제 내려오시오.” 하고는 전라도 구두쇠가 땀을 뻘뻘 흘리며 나뭇가지에서 내려오자 “큰 부자가 되려면 예사로운 구두쇠 정도로는 안 되지요 한번 들어온 돈은 나무가지를 한손으로 잡았던 손처럼 절대 놓아서는 안되며 방금 전 나뭇가지에 매달려 죽게 되었을때의 순간을 잊어선 아니되오 만사를 죽기를 각오하고 실행한다면 목적한 일을 달성할수 있을 것이오.” 라고 말하였지요 전라도 구두쇠는 조륵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그날밤 전라도 구두쇠는 조륵의 사랑방에서 자게 되었는데 몇년을 내버려 두었는지 창구멍이 뚫어져 황소 바람이 숭숭 들어왔지요 전라도 구두쇠는 하도 추워 마침 주머니에 들어 있던 창호지 조각을 꺼내어 저녁밥을 먹을때 남긴 밥풀 몇 알을 붙여서 대강 창구멍을 붙이고 잤어요 그러고는 아침에 조륵의 집을 나서면서 전라도 구두쇠 답게 “조공! 문에 발랐던 종이는 내 것이니 뜯어 가도 되지요?” 하였어요 그러자 조륵은 눈빛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암요, 떼어 가셔야지요” 하였지요 그리하여 전라도 구두쇠는 많은 것을 배웠다는 기쁨에 활개를 치며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와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니 조륵이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어요 달려와 전라도 구두쇠앞에 다가선 조륵은 턱에 받친 목소리로, “그 창호지는 손님 것이니 가져가도 되지만 종이에 묻은 밥풀은 우리집 것이니 떼어놓고 가야 마땅하지 않소.” 하였지요 전라도 구두쇠는 아연실색하고 창호지를 꺼내주자 조륵은 준비해온 목침 위에다 종이를 펼쳐 놓고 칼로 밥풀자리를 박박 긁어내어 주머니에 담아 가지고 갔어요 전라도 구두쇠는 “과연! 과연!” 하고 탄복하며 고향집으로 돌아 갔다 하네요 이렇듯 지독한 자린고비 행색이 마침내 조정에까지 알려졌는데 조정에서는 조륵의 이러한 행위가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판단하여 정확한 사실 여부를 알기 위해 암행어사를 파견하였어요 그리하여 암행어사가 과객 차림을 하고 조륵의 집에 가서 며칠 묵으며 사정을 알아보기로 하였지요 그런데 암행어사가 며칠 묵는 동안 조륵은 한양에서 소문으로 듣던 그 자린고비 조륵이 아니었어요 암행어사라고 눈치를 챈것 같지도 않은데 식사때마다 진수성찬에 좋은 술까지 대접하고 그야말로 칙사대접이 따로 없었지요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서 수소문해 보니 조륵이 환갑이 되는 해부터 누구에게나 후하게 대하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불러다가 돈도 주고 쌀도 주는 등 아주 딴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였어요 암행어사가 사정을 알고 그만 떠나려고 인사를 하자 조륵은 “아니, 이삼일만 더 있으면 내 환갑날이니 기왕지사 좀더 쉬었다가 잔치상이나 받고 가시오.” 하였지요 그리하여 못 이기는 체하며 잔칫날까지 묵게 되었는데 그날 조륵은 환갑잔치에 모인 사람들에게 “여러분, 그 동안 나는 나혼자 잘살려고 구두쇠 노릇을 한것이 아니었다오 오늘 찾아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평생을 근검절약하며 재산을 모은것이오 그동안 안먹고 안쓰고 재산을 모았지만 환갑날인 오늘부로 내 일은 모두 끝났것같소” 하면서 그 동안 자린고비로 굽어지고 꼬였던 세간의 오해와 미안함을 풀었어요 그러면서 석공을 불러 앞냇가에 다리를 놓고 둑을 쌓아 땅을 개간하여 굶주린 이웃들을 위해 농지를 무상으로 분배해주었어요 그리고 전라도, 경상도에 극심한 가뭄이 들자 전재산을 풀어 백성들을 구제 하였지요 암행어사는 임금께 조륵의 이러한 선행을 자세하게 고하였고 임금도 기특하게 생각하여 친히 벼슬을 내리고 칭찬하였어요 그러나 조륵은 자기가 한일은 당연한 일이라며 왕이 내린 벼슬을 거절하였지요 그리자 조륵에게 도움을 받은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이 조륵을 ‘자린고비’가 아닌 ‘자인고비’라고 부르며 선덕비를 세우고 칭찬하였는데 여기에서 ‘고’자는 “나를 낳아준 어버이”란 뜻이라고 하네요 (자인고비:慈仁考碑, 어버이같이 인자한 사람을 위한 비석이라는 의미) 아무튼 조륵이 일생 모은 재산을 뜻있는 일에 보람 있게 다 써버리고 6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요 만석꾼의 자식이었건만 유산다운 유산 하나 받지 못한 자식들에게 그가 남긴 말은 “네 복은 네가 타서 살려므나.” 했다 하네요 재산을 후대에 남기지 않고 만인을 위해 모두 사용한 거부들은 많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를 실행한 의부들의 정신과 그들의 유지는 면면히 남아 그들을 추앙하지요 세속의 이인(異人)이라 불리던 의주 만상(灣商) 임상옥(1779~1855)이 있으며 해방 직후 경주 만석지기 최준(1884~1970)도 스스로 토지를 개척하고 재산의 대부분을 대학에 기부하였지요 또 기업인으로서 부산바닥에서 거지들의 재활을 도와 일명 거지대장으로 불린 김지태(1908~1982, 한국생사, 삼화그룹 회장 역임) 도 있고 평생을 모은 재산을 후학들의 장학금으로 모두 사용한 평양의 백선행 여사 등 모두 한국 의부(義富)들의 계보 이지요 이처럼 자린고비라는 말에는 아름답고 심오한 희생정신이 숨어 있는데도 우리들은 자린고비 하면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아 좋은 일에 쓰는것 이것이 진짜 자린고비의 유래 이지요 그래서 모든일에는 그 내막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써야 하지요 -* (일송) *- ▲ 조륵선생 자린고비 유래비


    ▲ 자린고비 유래비 내용


    ▲ 자린고비 조륵선생 생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


    ▲ㄱ자형 자린고비 생가(만석군집치고 검소한 냄새가 풍기는 생가)



    ▲ 평범하여 보이는 자린고비 생가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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