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임금님의 이름과 묘호(廟號)

청정지역 2019. 2. 5. 18:59


▲ 세종대왕의 어진 ...

    ♣ 임금님의 이름과 묘호(廟號) ♣


    왕은 절대 군주제로 있을 당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었지요 그래서 왕의 이름은 서너개가 보통이고 많게는 여섯개까지 있었다 하지요 왕도 태어나면서 부터 붙여지는 이름이 있었는데 거의 외자 이름을 사용하였어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도,이유,이산 이척 등등 .... 세종:이도(李祹), 세조:이유(李瑈), 영조:이금(李昑), 정조:이산(李祘), 순종:이척(李拓)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 임금의 이름은 누구도 함부로 부를수 없으며 문서나 문자로도 쓸수없도록 정해져 있었지요 그래서 실생활에 자주 쓰이지 않는 외자 글자로 이름을 지었다 하네요 다음은 관례(冠禮)때 받는 자(字)와 호(號)가 있어요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성인이 되면 관례(冠禮)를 치르게 되는데 원래의 이름외에 성인으로서의 이름을 새로이 부여받게 되지요 이를 자(字)라 부르며 집안 어른들이 내려주는 이름이며 호(號)는 스승이나 친구들이 붙여주는 이름이지요 다음으로 왕이 생을 다하고 승하하면 그분의 공덕을 기리는 시호(諡號)가 있는데 이는 신료(만조백관)들이 올리는 시호였으나 중국황제의 승인을 받아야만 했어요 중국 황제의 승인전까지 부르는 호칭은 "대행대왕(大行大王)이라 불러야 했으며 참고로 세종의 시호는 장헌(莊憲)이며 성종의 시호는 강정(康靖)이라 하지요 왕이 승하한지 3년상이 끝나면 종묘(宗廟)에 신위(神位)를 모시는데 이때 종묘에서 부르는 존호(尊號)를 묘호(廟號)라고 하지요 본래 묘호(廟號)는 공과 업적이 큰 소수의 군주들만이 받는 영예로운 칭호였으나 후대 왕조에 들어설수록 점차 남발되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때 본격적으로 묘호와 종법 제도가 전래되었으나 원나라의 간섭이 심하여 고려시대때는 쓰지 못하다가 조선시대때 다시 쓰기 시작 했지요 묘호(廟號)는 군주의 치세를 나타내는 앞글자 하나와 ‘조’(祖) 또는 ‘종’(宗)의 2글자로 이루어지지요 조(祖) 또는 종(宗) 앞에 붙는 글자는 일반적인 시호법(諡號法)에 준하여 뒤를 이은 군주와 신하들이 결정하여 올리게 되지요 묘호(廟號)는 오로지 종묘에 신주를 모신 군주에게만 붙이는데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은 나라를 세운 왕(創業之主)에겐 조(祖)를 선왕의 뜻을 계승하여 나라를 잘 다스린 왕(繼體之主)에겐 종(宗)을 붙였지요 그러다 후대에 와서는 모든 군주들에게 모두다 붙이게 되었는데 유공왈조 유덕왈종(有功曰祖 有德曰宗) "공이 있으면 조(祖)" "덕이 있으면 종(宗)"이라 했으며 입승왈조 계승왈종(入承曰祖 繼承曰宗) "새롭게 일어나면 조(祖)" "계승하면 종(宗)"이라 하였지요 다시말해 나라를 세우거나 그에 비견(比肩)될 만한 업적이 있거나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공(功)이 있다면 조(祖)를 붙이고 나라를 다스린 것에 덕(德)이 우세하거나 선왕의 뜻을 잘 계승해 종묘사직을 지킨 군주라면 종(宗)을 사용하였어요 예를들어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를 태조(太祖)라 칭한것이 대표적인 예이며 반정을 통해 즉위했거나 큰 국난을 치른 임금도 조(祖)의 묘호를 가지게 되었다 하는군요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宣祖)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仁祖) 홍경래의 난을 치룬 순조(純祖) 또 반정은 아니지만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世祖)수양대군 등등이 있어요 이렇듯 조(祖)는 종(宗)보다 격이 높다하여 원래는 영종.정종.순종이었으나 고종때 영종과 정종을 영조와 정조로 묘호를 바꾸었으며 철종때 순종을 순조로 바꾸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종(宗)이라 하여 치적이 적거나 선정을 베풀지 않은것은 아닌것이 우리가 가장많이 추앙하고있는 세종대왕(世宗大王)도 종(宗)이기 때문이지요 묘호(廟號)라는 제도는 중국에서 전래됐으며 원래 중국황제에게만 사용할수 있었다 하는데 그래서 중국 당나라 원나라로 부터 제약이 심하여 신라왕 중에는 태종 무열왕만이 묘호를 썼고 고려왕중에는 태조 왕건만이 조(祖)의 묘호를 썼다 하는군요 그러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는 제후국이면서도 왕권을 강화하며 사대(事大)와 자주(自主)를 잘 표방하여 명실공히 황제의 묘호를 누렸다 하네요 끝으로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陵)이라 하는데 이는 구릉(언덕)이란 뜻으로 왕의 무덤이 구릉(언덕)처럼 크고 웅장하다는 의미이며 후대에 추대된 왕의 무덤은 능이라 하지만 왕위에 있다가 축출된 왕은 묘라 하지요 예를 들어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는 각각 장조와 헌경황후로 추존되어 융릉(隆陵)이라 불리지만 왕위에서 축출된 연산군과 광해군은 묘(墓)로 불리지요 다음은 원(園)인데 왕세자와 왕세자비 왕세손과 왕세손비 또는 왕의 생모인 빈(嬪)과 왕의 친아버지 무덤을 원(園)이라 하지요 예를 들어 사도세자(장조)가 추존 되기 전에는 영우원(永祐園)으로 불리었지요 그리고 순조(純祖)를 낳은 수빈박씨(綏嬪 朴氏)의 산소를 휘경원(徽慶園)이라 불렀으며 지금의 서울시 휘경동은 그 산소이름에서 따온 지명이지요 그리고 묘(墓)는 그 외에 빈, 왕자, 공주, 옹주, 후궁, 귀인 등의 무덤뿐만 아니라 만백성들의 무덤을 말하지요 예로써 숙종때 희빈 장씨는 한때는 중전의 자리에 있었으나 폐서인 되어 사사(賜死)되었으므로 그 무덤은 대빈묘(大賓墓)로 불리고 있어요 이 밖에 누구의 무덤인지 알지 못하지만 벽화나 유물 등 특징적인 것이 있는 경우 총(塚)이라 하고 유물도 없고 주인공도 모르면 분(墳)이라고 해야 하지요 그래서 경주에 가면 금관총이 있는데 그무덤에서 금관(金冠)이 출토되어 금관총(金冠塚)이라 하고 천마총은 그 무덤에서 천마도(天馬圖)가 출토되어 천마총(天馬塚)이라 부르고 있지요 또한 경주 서악리와 보문리에 고분들이 많아 서악리 고분군(西岳里古墳群) 보문리 고분군(普門里古墳群)이라 부르고 있다 하네요 -* 일송 *- ▲ 태조 이성계의 청룡포 어진 ...


    ▲ 세조(수양대군)의 초상화 ...


    ▲ 종묘 대제(宗廟大祭)를 봉행하는사진 ... 종묘는 조선의 왕과 왕비들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곳이지요


    ★ 여주 영능의 이모저모 ...


    ▲ 세종대왕의 동상과 기념관 그리고 옛날 능지기들이 거처하던곳...


    ▲ 홍살문과 정자각 ...


    ▲ 수라간과 비각 ...


    ▲ 능상의 모습 ...


    ▲ 세종대왕능의 석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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