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간양록

청정지역 2019. 12. 13. 20:15

 지상낙원 격변기(激變機) 2장 겨울방학 - [지낙 전국시대] (BGM)


간양록



 강항이 간양록(看羊錄)의 제목을 본래

 '죄인이 타는 수레'라는 뜻의

『건거록(巾車錄)』이라 지은 것도

하늘 보기가 부끄럽다고 한 것이다.

 

간양록(看羊錄)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잡혀갔던 조선의 포로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인 강항(姜沆)이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체험을 기록한 글이다.


그 시기는 선조 30년(1597) 9월에서 33년(1600) 5월까지이다.

 

건거록(巾車錄)이여!

 

『간양록』에는 혈육에 대한 그리움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가 잘 표출되어 있다.

이 글은 강항이 1598년 새해를 맞이하여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쓴 글이다.


「좋은 때와 명절일수록 더욱 마음이 슬펐다.

임금과 어버이를 바라보면

모두 만리의 큰 바다 밖에 있다.


바야흐로 화창한 봄을 맞이하여

초목과 모든 생물이 다 스스로의 즐거움이 있는데,

우리 형제는 눈물이 가득찬 눈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글은 강항이 1598년 새해를 맞이하여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쓴 글이다.

강항의 집안은 피란길에 오르면서

두 척의 배를 준비했었다.


그런데 부친은 배멀미 때문에

작은 아버지와 함께 큰 배에 탔고,

강항은 형제 및 그 밖의

집안사람들과 함께 작은 배를 탔다.


그런데 사공이 실수로 닻줄을 풀어 놓아

강항의 배는 부친이 탄 배와 떨어지고 말았다.

그 이후 강항 형제는 일본군에 피랍되었고,

부친에 대해서는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봄비가 한 번 지나고 나면 돌아갈 생각 배나 많아진다오.

어느 때나 우리 집 담장 밑에 손수 심은 꽃 다시 볼거나.」

 

『간양록』에 나타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대부분 꿈을 통해 표출되거나,

사물을 매개로 한 정경화(情景化)를 통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고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심정 및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감추지 않고 있다.


강항이 느끼는 부끄러움은 전쟁터에서

떳떳하게 죽지 못하고, 구차하게 살아

포로로서 감내해야 되는 치욕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임금에 대한

신하의 도리를 다 못한 것으로 여겼으므로

하늘 보기가 부끄럽다고 한 것이다.

 

강항이 이 글의 제목을 본래 '

죄인이 타는 수레'라는 뜻의

『건거록(巾車錄)』이라 지은 것도

이 같은 인식 때문이었다.


배한철의  『고전으로 읽는 우리역사』Ⅱ- 자서실기,간양록,성호사설,지봉유설,고금소총,연여실기술,산림경제,필원집기,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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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책. 목판본. 원래 저자는 죄인이라는 뜻에서

이를 ‘건거록(巾車錄)’이라 하였는데,

1656년(효종 7) 가을 이 책이 간행될 때,

그의 제자들이 책명을 지금의 것으로 고쳤다. ‘


간양’이란 흉노땅에 포로로 잡혀갔던

한나라 소무(蘇武)의 충절을 뜻하는 것으로,

그것에 강항의 애국충절을 견주어 말한 것이다.


『수은집(睡隱集)』의 별책으로 간행되기도 했는데,

유계(兪棨)의 서문과 제자 윤순거(尹舜擧)의

발문이 실려 있다. 규장각도서와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은 적지에서 임금께 올린

「적중봉소(賊中封疏)」와 당시 일본의 지도를 그린 「

왜국팔도육십육주도(倭國八道六十六州圖)」

, 포로들에게 준 고부인격(告俘人檄), 귀국 후에 올린

「예승정원계사(詣承政院啓辭)」,


적국에서의 환란생활의 시말을 기록한

「섭란사적(涉亂事迹)」으로 되어 있다.


이 기록들은 적국에서 당한 포로들의 참상과

그곳에서 보고 들은 실정을 빠짐없이

기록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전란에 대비해야 할 국내정책에까지

언급하고 있는 충절의 기록이다.


 이 책은 민족항일기에 분서(焚書)의

화를 입어 현재는 희귀본으로 되어 있다.



간양록(看羊錄)  -조용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