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늘아,
에미도 명절이 무섭고 힘들단다...!
귀성길 차안에서 다퉜나,
아들·며느리 눈치보고
얄미운 며느리
불쑥 던진 말에 상처받아
저희도 나이들면 알겠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이유
영감, 그동안 잘 지내셨슈...?
여기는 시방
구정 명절이 콧등이라 어수선하다우.
세월이란 놈은
또 왜 이리도 씽씽 달리는지.
입만 청춘인 늙은 노모는
뜀박질 흉내를 내면서는
'우산 뽈트 달려가 듯
세월이 간다'고 하더이다.
'우산 뽈트'가 뭔지
영감은 아슈...?
또 그놈의 청승이라고 하겠지만,
내가 오늘은 이바구 좀 해야겠소.
그까짓 갱년기
국물에 말아먹은 지 십수년이고,
하루하루 숨 붙여 사는 것도
기특한 칠순 늙은이가
암만해도 우울증에 걸렸나 보오.
해 저물녘
마루에 걸터앉아 있으면
엄마 잃은 코 흘리개 마냥
철철 눈물이 나고요.
허구한 날 바람이라
내 속을 숯검댕이로 태운 영감탱이,
산 송장 이라도 좋으니
아랫목에서 좀 더 뭉개다 가지
그새 갔나 싶습디다.
노망이 맞지요...?
어제는
웬수 같은 천식이 불같이 도져
부랴부랴
택시 잡아 타고 병원엘 갔댔지요.
혼자 동그마니 앉아서
진료를 받으니 의사가 물어요.
"보호자는 안 오셨나요...?"
병원을 돌아 나오는데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 가관 이데요.
축 처진 볼에
기역자로 굽은 등이
마귀 할멈이 따로 없어.
팔뚝엔 또 염치도 없이 거뭇거뭇
저승꽃이 피어서는,
왕년의 젊었던, 그 대찬 기운은
어디로 갔는가 서글퍼 집디다.
그래도 명절이라
자식들 만나 좋겠다고요...?
좋지요.
햇살 같은 내 손주들이 좋지요.
자식들은 어려워요.
그네들 머리에도 서리 내려 그런가,
해가 갈수록
말 붙이기도 힘드네요.
대문간 들어설 때 부터 내가
아들 며느리
눈치를 본다면 말 다했지 뭐유.
귀성길
차 안에서 다투진 않았는가,
그까짓 차례가 뭐라고
돈 버느라 피곤에 지친 애들을
예닐 곱 시간씩
고속도로에 갇히게 한 건 아닌가.
미리미리 음식 장만해 놔야지
서둘렀어도 차례상 올리기 직전까지
잡일이 넘쳐나니
며늘애들 눈 맞추기 면구스럽고,
짜증도 나고요.
명절은 1년에 한 번만 치르면
안 되는 건지
염라대왕 한테 좀 물어 봐 주슈.
지난 설엔 둘째 며늘애가 '
기름진 명절 음식 누가 먹는다고
이렇게 많이 하세요...?' 하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디다.
'누가 먹긴 누가 먹어,
니 남편이 먹고
니 자식들이 먹지 이것아!'
소리가 목울대를 넘어오는데,
꼴깍 삼켰지요.
서울 올라 갈 땐
동그랑땡 하나 안 남기고
들기름에 참깨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주제에.
먹다 남은 과일까지 죄다 싸주면
그제야 얼굴이 뽀얗게 펴져서는 '
어머니, 또 올게요옹~'
하고 자동차에
낼름 올라타는데 얄미워 죽겄어요.
이래저래 퍼주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시에미는 김치 한 가지에
물 말아 먹기 일쑤라는 것을
자식들은 알까요.
나도 뒷집 장성댁처럼
김치 담그고 고추장 담가 보낼 때
택배비에 수공비 까지
에누리 없이 받아낼까 고심 중이라오.
삼팔광땡 시어머니 만난 줄도 모르고
투덜거리기는. 안 그러우...?
그래도 몇 살 더 먹었다고
큰 며느리는
이 시에미 심중을 아는 것도 같습디다.
그 목석 같던 며늘애가
음식 몇 가지는 알아서 만들어도 오고,
말 끝마다
무릎도 아픈데 좀 앉아 계세요'
'어머니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어요'
하는 소릴 다 할 줄 알고요.
일면식 없는 처녀들이 느닷없이 전화 걸어
'고객님 사랑합니다~' 해도
가슴이 뭉클한데,
며늘애한테 그 비슷한 소릴 들으니
마음이 다 울컥합디다.
더러 못된 시어머니도 있겠지요.
세상 변한 줄 모르고
안하무인 격으로 구는
시어머니도 가다가다 있겠지요.
암만 그래도
배 속에서부터 며느리 괴롭히려고
작심하고 태어난 사람 있겄어요...?
유세를 부려봤자
한 물간 권력이요,
낼 모레
저승길 떠날 신세인데
애교로 좀 봐주면 안 되나요...?
제 아들 굶기나 싶어
며느리 집
냉장고 단속하는
시어머니도 별로지만,
명절이라면
도끼 눈부터 뜨는
유식한 여자들도 격은 없어 보입디다.
허구한 날
어린 자식 쥐 잡듯 하는 저희는
얼마나 민주적인 시어머니 될란가
저승 가서 지켜볼라고요.
그러게 물려 줄 땅이라도 좀 있었으면
나도 큰소리치고 살 것 아니유.
살아 생전 뭐 하고 싸돌아 다니느라
밭 한 뙈기를 못 사놨수.
거두절미 하고,
저승길에 무사히 갔거든,
백수 된 우리 셋째
좋은 직장 구하게 해달라고
염라대왕님한테 빽 좀 써보슈.
마흔이 코앞인데
여태 제짝 못 찾은 우리 딸내미,
주름살 늘지 않게
틈날 때 마다 좀 굽어 살펴주시오.
참, 올 추석은 큰 아들네가
콘돈가 뭔가 하는 데서 지낸답디다.
음식은 저희가 장만 할 터이니
날 더러는 맨몸으로 오랍디다.
우리 손주들 좋아하는
깨 송편 만들어서 이고 지고 갈라고요.
영감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찾아오시오.
새로 난 고속도로가 빠르다 하니,
알 토란 같은 손주들 보고자프면
우산 뽈트처럼 씽씽 달려오시오.
날아오시오.
영감 잘 지내시고 다음에 또 봅시다,,,,
......!!!!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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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청보향우회
메모 : 부모님 샇아생전 효도 게을리 하지마소
돌아가신 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