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야담) 메밀꽃 필 무렵

청정지역 2015. 7. 14. 10:15

 

 

 

 

 

이진사의 둘째딸 초분이는 시집간 지 두 해도 안되어
청상과부가 됐다. 새신랑의 죽음이 괴이했다.

 기골이 장대하던 신랑이 잔칫집에 갔다가
술이 잔뜩 취해서 집에 들어와 옷을 훌렁훌렁 벗어젖히더니
새신부 초분의 속치마 속으로 머리를 디밀며
평소에 안하던 짓을 했다. 점잖던 신랑의 쌍스러운 행동에
그만 새신부 초분이도 불같이 뜨거워져 상상만 했던
발칙스러운 짓을 서슴없이 해댔다.

 문풍지를 찢을 듯하던 새신랑의 숨소리가
헉 하더니 축 늘어졌다. 그것도 모른 채
집채 같은 동체에 깔린 채 요분질을 해대던
초분이 등줄기에 땀을 흠뻑 쏟고 한참만에
제정신이 들어 간신히 빠져나와 보니
신랑의 숨소리가 멎어 있었다.
한밤중에 의원을 데려오고 난리를 쳤지만
죽은 아들 불알 만지기였다. 소위 복상사를 한 것이다.

 시부모는 혹시 유복자라도 받을까 싶어
여섯달을 기다렸지만 입덧조차 없자
새신부는 시집에서 쫓겨나 친정으로 돌아왔다.
후원 별당에서 독수공방, 나날을 보내며
나비가 짝을 짓는 걸 보고도 눈물을 흘리고
그믐달을 보고도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매파가 찾아왔지만 양반 가문의 수치라며
이진사는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쫓아 버렸다.
그러나 두문불출하는 청상과부 둘째딸을 바라보는
이진사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몇해가 흘렀다.
어느 가을날, 밤은 깊어 삼경일 제 소피를 보러 일어났던
이진사가 풀벌레 소리에 그만 마음이 심란해져 방문을
열고 나가니 감나무 가지에 그믐달이 걸렸다.

 두 손을 뒷짐 지고 마당을 지나 본채 처마 밑을 돌아
후원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 청상과부 둘째딸이 거처하는
별당에서 검은 그림자가 뛰쳐나왔다.

 “도둑이야!”

 이진사의 고함 소리에 행랑아범과 하인들이 달려 나와
월담하려는 도둑을 잡고 보니 청산골 외딴집에 혼자 살며
약초 캐는 노총각이다.
가끔씩 산삼을 캐면 이진사를 찾아와 얼굴이 익었다.

 이진사가 얼른 별당문을 열어 보니 벗은 몸을 이불로 감싸 안고
초분이는 울고 있었다.
마당에 횃불을 밝히고 노총각을 묶어 형틀에 눕혔다.
이진사가 손수 몽둥이를 들고 팔을 걷어붙였을 때
맏며느리가 달려 나와 이진사를 가로막았다.

 “아버님, 빨리 별당으로 가 보세요.”

 이진사가 몽둥이를 던지고 후원으로 갔을 때,
둘째딸이 소복을 입고 감나무 가지에 치마끈을 묶어
목을 매려 하는 걸 간발의 차이로 살려 냈다.

 약초 캐는 노총각은 포승에 묶인 채 창고 속에 갇히고
이진사는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며느리가 술상을 차려 내오고,
동이 틀 때까지 이진사와 며느리는 한참 얘기를 나눴다.

 20여일이 지났다.
깨어질 듯 청명한 밤하늘에 보름달이 중천을 넘은 깊은 밤.
소금을 뿌린 듯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골짝으로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가 당나귀 등에 타고
남자는 힘찬 발걸음으로 고삐를 당겼다.
당나귀 등엔 문전옥답 쉰마지기는
사고도 남을 전대도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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