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전란 속의 효자 (김천)

청정지역 2015. 8. 31. 08:58

 

 

 

 

 

 

전란 속의 효자(김천)

 

몽고군이 고려 땅을 짓 밟아온 지 무려 스무 해가 넘을 무렵이었다.

고려 조정은 백성들은 아랑곳없이 천혜의 요새 강화도로 천도하여

평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 백성들은 몽고병들 에게 숱한 시달림을 당하고

때로는 죽음을 당했다.

 

고종 말년 강원도 명주 땅에 김천(金遷)이라는 효자가 있었다.

그의 어릴 때 이름은 해장(海壯)이었다.

 

해장은 어려서부터 용모가 뛰어나고 풍채가 좋아 동네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게다가 효성이 지극하고 예절이 바르고 형제간의 우애가 남다르게 깊었다

어쩌다가 부모님이 병석에 누우면 해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간호했다.

어머니는 호장 벼슬의 김자릉의 딸로서 역시 호장 벼슬의 아버지 김종연에게

시집을 왔다.

 

현모양처로 어려서부터 규방에서 소학·효경 등을 읽은 유식한 여인이었다.

해장의 집안은 늘 웃음꽃이 피었다. 해장의 할아버지 때부터 전해 오는

많은 땅으로 살림 넉넉하겠다, 현숙한 어머니의 이야기 솜씨가 뛰어나겠다,

해장이 훤훤 장부로 잘 커가고 있어서였다.

게다가 명주땅(강릉)의 내노라 하는 딸 가진 집에서는 해장을 사위로 맞으려고

 매파를 하루가 멀다고 보내왔다.

 

해장의 집에서는 촉선 땅 고진사의 둘째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길일을 택하여 놓고 잔치 준비에 한창 바빴다.

그 해 가을도 저물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해장의 어머니가 작은 아들 덕린을 데리고 평창의 친정에 다녀오다가 때마침

몰려온 몽고 병에게 붙잡혀 버렸다. 몽고 병은 고려의 아녀자와 아이들을

잡아다가 저희 나라 종으로 삼았다.

이 소문을 들은 해장의 집에서는 어머니와 동생이 죽은 줄 알고 상복을 입었다.

해장의 혼인 날짜도 3년 후로 미루어졌다.

3년 상을 치른 후에야 혼인할 수 있었다.

해장은 바깥 출입을 삼가고 집안에 틀어박혀 죄인처럼 지내었다.

3년 상을 치른 후 해장은 혼인식을 치렀다.

그러나 해장은 즐겁기는 커녕 비통하기만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병석에 누워 계시고

아내는 아내대로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해장이 혼인한 이후 해마다 흉년이 들고 아버지마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수발을 드느라고 어느새 살림이 졸아들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해장이 친구 빚보증을 서 주었다가 잘못되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물려준 땅마저 거의 거덜이 나고 말았다.

해장은 평생 해보지 않던 농사일에 매달리며 아버지 병수발을 들고

겨우 입에 풀칠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어머니가 몽고 병에게 끌려간 지 15년이 흘렀다.

어느 날 밤 해장은 해괴한 꿈을 꾸었다.

생전 보이지 않던 어머니가 나타나 자기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것이었다.

"해장아! 어미를 모르겠느냐?"

해장은 깜짝 놀라 잠이 깨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보름달이 휘영청 추녀 끝에 걸려 있었다.

'휴우... 아무래도 이상하구나.

어머니께서 살아 계실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며 잠을 설치고 뒤척였다.

어머니의 부름 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했다.

아내가 부시시 눈을 뜨고 뒤척이는 남편에게 물었다.

"나쁜 꿈을 꾸었어요?"

"좋은 꿈이요, 허나 꿈은 꿈일 뿐이요."

"황금덩이라도 만져 봤나요."

"쓸데없는 소리, 어머니를 보았소."

"어머님을요?" 아내도 숙연해졌다.

"살아계신 것 같소. 꿈이 그것을 예시해 준 것 같소."
"
설마요. 15년 동안이나 소식이 끊긴 분이에요.

너무 깊이 생각지 말아요."

 

그 후 해장은 볼 일이 있어 명주 장에 나갔다.

볼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정선에 사는 친구 김순(金純)을 만났다.
"
해장이 마침 잘 만났네. 그렇잖아도 자네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네."

"나를? 급한 일이라도 있었는가?"

", 급하다마다."

"무슨일이야? 사람 속태우지 말고 말해보게."

"자네 놀라지 말고 침착하게. 어머님이 살아 계시네."

"이 사람 순공. 자네 어머님께세 살아계시는 걸 내가 몰라서 이러나?"

"이 사람아, 자네 어머님이 몽고 땅에 살아계시단 말야."

"아니 뭐?"
해장은 며칠 전 선명하던 꿈이 생각나서 몹시 긴장되었다.

김순은 편지를 해장에게 주며 말했다.
"
정선 쪽에서 명주로 들어오는 주막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네.

몽고에서 왔다는 습성(習成)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명주 땅 김천을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외치는 것일세.

나는 귀가 번쩍 트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가 김천의 친구라고 했지.

그랬더니 동경(몽고의 서울)에 있는 자네 어머님의 편지를 갖고 왔다는 거야.

나는 그 편지를 빼앗다시피 하여 자네를 만나러 오는 길일세."
"
고마우이 친구."

김천과 김순은 길가 풀밭에 앉아 편지를 읽었다.


'
해장아, 어미는 살아 있으나 죽은 목숨과 같구나.

가족들이 보고 싶어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있단다.

나는 동경에서 조금 떨어진 북주라는 곳에서 장()씨 집의 노비로 있단다.

낮에는 김매고 밤에는 방아 찧고 하루도 쉴새 없이 일하지만

이 어미는 배가 고파 피골이 상접해 있단다.

그러나 어찌 생사조차 알 수 있단 말이냐.

네 동생도 살아서 역시 남의 집 종노릇을하고 있단다.

이 무슨 날벼락이냐.

전쟁에 진 백성의 비참한 실정을 글로 어찌 너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암담하구나.

너를 한 번만 보고 눈을 감으면 원이 없겠다.

맞을 뻔하다가 맞지 못한 내 며느리도 보고 싶구나.

그러나 꿈에서나 갈수 있는 내 고국 내 고향 내 집이랴.

바라서 무얼 하겠느냐...

 

'해장은 죽은 줄로 알고 있던 어머니의 편지를 대하고, 대성통곡을 터뜨렸다.

이 가혹한 운명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설움만이 복받칠 따름이었다.

"이보게 해장이, 기운을 내게. 이제 어머님을 찾아 길을 떠나야 하지 않겠나."

"떠나야지. 떠나지 말고..."
그러나 기막힐 노릇이었다. 가난뱅이로 전락하여 땡전 한 푼 없었던 것이다.

돈이 있어야 어머니와 동생을 속량(贖良)해 올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앉아서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해장은 부지런히 일 하여 돈을 모으고,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렇게 한 1년 모은 돈이 백 냥 정도 되었다. 해장은 우선 개경으로 올라갔다.

금나라로 가는 길을 알아보기 위해서 였다
몽고에 가는 월국장(여행권)은 천도한 강화도에 가서 내야했다.

몽고와 고려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여 월국장이 나오기는 힘들었다.

무역상 외에 일반 백성들은 하늘을 별따기 였다.
여기 저기 몽고에 갈 방법을 알아보고 일단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럭저럭 또 몇 해가 흘러갔다.

해장은 다시 개경으로 돌아와 몽고로 들어갈 방법을 알아 보았다.

전번에 비해 별로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개경을 떠날 수가 없어 여기 저기 기웃거렸다.

노자가 떨어져 잠잘 곳과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런 어느 날 효록(
孝祿)이라는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조정과도 통하고 영향력이 있었다.

해장은 그 스님에게 넋두리 삼아 자기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효록은 인정 많고 통이 큰 스님이었다.

효록은 해장을 몽고의 동경으로 보내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았다.

때마침 효록의 형이 국사로 동경에 가게 되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해장을 그 일행에 끼워 주었다.

그리하여 해장은 습성으로 부터 편지를 받은 지

 6년 만에 동경으로 가게 되었다.


해장은 동경에 닿아 유씨(柳氏)의 객사에 묵었다.

그리고 효록의 형 충연(忠緣)으로부터 고려 사람 공명(孔明)을 소개 받았다.

공명은 해장을 북주로 데리고 가서 어머니를 종으로 부리고 있는

요좌(要左)의 집을 찾아 주었다.

두 사람은 요좌의 집을 찾아 주인을 만나려고 집 앞에서 서성거렸다.

때마침 한 노파가 그 집에서 나와 쓰레기를 버렸다.

"여기가 요좌씨 댁 맞지요?"

"그렇소만, 댁들은 누구시오?"노파는 굽은 허리를 펴고

두 사람을 흐린 눈으로 번갈아 보았다.

해장은 누더기를 걸친 노파를 쳐다보며 측은하여 눈물을 찔끔거렸다.

"우린 고려에서 온 사람이오."공명이 노파에게 대답하고

주인이 집에 있는지 물었다.

"주인은 외출 중이오만, 무슨 일로 고려 사람이 여기를 왔소?"

"고려 사람을 찾으러 왔소."

"고려 사람을 ? 나도 고려 사람이오. 나는 고려국 명주땅 호장 김장릉의 딸이오.

내 남편은 호장 김종연이고, 내 아들은 김천이오."

"어머니! 어머님이 이런 모습이라니, 이게 웬일이십니까?"
해장이 노파에게 달려 들어 와락 껴안았다.

노파는 눈을 꿈벅거리다가 해장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었다.

두 줄기 눈물이 주름살 사이로 흘러내렸다.

"네가 정말 해장이더냐? 네가 어떻게 이곳을... 해장아, 내 아들 해장아!"

노파는 목을 놓고 울었다.

모자는 얼싸안고 땅을 치며 통곡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공명도 눈물을 훔쳤다.

모자가 해후한 후 해장은 잠시 어머니와 헤어져 객사로 돌아왔다.

 

며칠 후 다시 해장은 요좌의 집에 찾아가 속량비로 백 냥을 내놓고

어머니를 풀어달라고 사정했다.

요좌는 돈을 힐끔 보고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일 없어! 속량 못해!"
함께 간 공명이 아무리 여러 말로 간청해 보았으나

요좌는 요지부동이었다.

해장은 눈물을 흘리며 객사로 돌아왔다.

요좌는 돈 욕심을 내고 해장의 어머니를 풀어주지 않았다.

돈만 많이 주면 당장 어머니를 모셔갈 수 있었으나

해장은 그럴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해장은 서변에 가서 동생 덕린도 만나 보았다.

형제는 실컷 울고 신세 타령만 할 뿐 속량할 길은 막연하기만 했다.

후일을 기약하며 피맺힌 작별을 하고 돌아온 해장은 객사에 돌아와

그만 자리에 누워 버렸다.

곡기도 끊고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해장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해장은 며칠을 누워 있다가 이대로 주저 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기운을 차려 장문의 진정서를 작성하여

동경 총관부에 올리고 소식을 기다렸다.  

며칠이 지났다. 총관부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 적은 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해요.

당신의 효심에 감복 했답니다..'편지와 함께 백 냥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해장은 자기를 도와준 사람이 주인집 외동딸 혜랑(蕙郞) 임을 알았다.

혜랑은 해장의 뛰어난 용모와 지극한 효심에 감동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몰래 백 냥짜리 수표를

해장이 자는 머리 맡에 가져 놓았던 것이다.
때마침 총관부에서도 해장에게 들어오라는 기별이 왔다.

해장은 곧 총관부로 달려갔다.

그는 관원에게 눈물을 흘리며 죄다 이야기해 주었다.

관원은 요좌에게 보내는 서찰을 건네 주었다.

그리고 약간의 노비와 역로(驛路) 관원에게 편의를 봐 주라는

증명서까지 만들어 주었다.
해장은 그 길로 요좌의 집으로 달려가 관원이 써준 서찰과

혜랑이 준 돈 백 냥을 합쳐 2백 냥을 요좌에게 주었다.

요좌는 서찰을 보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2백냥을 챙긴 후에 어머니를 속량시켜 주었다.

해장은 어머니를 모시고 객사로 돌아갔으나 문전 박대를 당하고 말았다.

혜량의 일이 발각되어 유씨가 딸을 큰 집으로 데리고 가고

해장을 객사에 들여놓지 않았다.

 해장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우 덕린을 찾아갔다.

셋이 또 한바탕 신세 타령을 늘어 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
조금만 참아라. 덕린아! 이 형이 꼭 너를 데리고 오겠다.

돈이 마련되는 대로 달려올 거야. 그때까지 몸성히 잘 지내야 돼."

"기다릴께요 형. 어머님을 모시고 가는 것만도 천만 다행이어요"
"
얘야, 희망을 버리지 마라.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오늘날 네 형을 만나 이런 영광을 누리지 않느냐"

어머니는 덕린을 부등켜 안고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해장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우를 이국 만리 몽고 땅에 떨어뜨린 채

귀국길에 올랐다.덕린의 애절하게 호소하는 모습이 눈에 박혀

해장은 눈앞이 흐려졌다. 어머니는 가다가 뒤돌아보며 한숨을 뿜어냈다.

귀국길은 몽고에서 귀국하는 사신 일행을 따라 동경을 떠난 지

두 달 만에 명주 땅에 도착했다.명주에는 해장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해장의 아버지가 병든 몸을 추스려 멀리까지 마중을 나왔다.

 

헤어진지 22년만에 부부가 다시 해후했다.

"여보, 당신을 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었소."
"
살아 계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어머니. 며느리 인사 받으셔요."

"아가, 너도 늙은이가 되었구나."

해장은 동네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즐거운 시간도 잠시였다.

몽고 땅에 두고 온 덕린을 잊지 못해 해장의 가족들은

우울한 나날을 보내었다.

 

해장이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온 지 5년이 지났다.

그 동안 덕린의 속량비를 마련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런데 그 해 봄, 몽고 옷을 입은 중년과 어여쁜 처자가

해장의 집에 나타났다. 덕린과 혜랑이었다.

혜랑이 집을 뛰쳐나와 덕린의 속량비를 물고 함께 명주로 것이다.

해장의 부인은 혜랑을 자매처럼 대했다.

그제야 해장의 집에 평화가 찾아왔다.

 

해장 즉 김천의 이야기는 <고려사> 열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구한 운명의 김천(해장)가족이야기로 효도를 주제로 다룬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 뒷면에는 고려조정은 강화도로 천도해서 백성들은 도외시하고

저희들은 평온한 삶을 사는 동안 무고하게 몽고에 끌려가 종살이 하는

부모형제를 구해오기 위해 속량전을 마련해야 하는등 민초의 삶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았던 과거의 뼈아픈 이야기입니다.

 

재삼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한나라 한민족 한겨레, 질시와 반목을 버리고

똘똘뭉쳐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부강하게 이어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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