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안동의 3대가문(태사묘)

청정지역 2016. 9. 17. 09:01

    

      


▲ 안동 태사묘(太師廟)


    ♣ 안동의 3대가문(태사묘(太師廟) ♣ 경상북도 안동(安東)은 조선시대때부터 유교문화가 강했던 곳이며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안동에서 배출된 인물은 조선시대 이전에도 이름난 인물들이 많이 있었어요 이 가운데 안동의 삼태사(三太師)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수 있지요 삼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 세분에게 태사(太師)의 벼슬을 내린 것이지요 이 세분은 원래 모두가 경주 김씨(金氏)였으나 큰 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에게 고려 태조 왕건은 안동권씨, 안동김씨, 안동장씨의 성을 하사(下賜)하였는데 그들의 시조가 권행(權幸), 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이라 하네요 왕건은 김선평에게는 대광, 권행과 장길에게는 대상이라는 벼슬을 주었으며 이외에도 고창(古昌)이라 불리던 이 지역 이름을 "안동(安東)"으로 바꿔 주었지요 이런 일로 삼태사는 안동의 명문집안이 되었으며 지금도 삼태사를 제사지내는 태사묘가 안동시 북문동에 있어요 신라 말엽 당시의 신라는 국운이 쇠약하여 곳곳에서 도적떼가 성행 하였고 특히 옛 백제 땅에서는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고 옛 고구려 땅에서는 고려가 일어나 날로 강성해 졌지요 마침내 후백제 견훤은 927년(신라 55대 경애왕 4년)군사를 이끌고 경주(서라벌)까지 처들어 갔어요 이때 신라의 경애왕은 비빈과 신하, 종친들을 대동하고 포석정에서 잔치를 하느라 견훤군이 쳐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지요 이 일로 인해 신라왕궁은 함락되고 경애왕은 포로로 잡히게 되었으며 견훤은 경애왕을 자결케 하고 왕비를 능욕하였으며 신라 왕궁의 재물을 빼앗고 죽인 경애왕의 동생을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으로 즉위시켰지요 이 소식을 전해들은 고려 태조 왕건이 5천의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구원하러 나섰다가 오히려 공산(公山) 동수(桐藪) 전투에서 견훤에게 포위을 당하여 살길이 막막해지자 최후의 수단으로 의제인 신숭겸(申崇謙)을 태조(왕건)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게하여 장열히 전사케 함으로써 이 틈을 이용하여 태조 왕건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할수 있었지요 그때 신숭겸(申崇謙) 김락(金樂) 등 8명의 장수가 모두 장열하게 전사하였는데 훗날 그 전투가 있었던 대구 부근의 공산(公山)을 팔공산(八公山)이라 부르게 하고 그들의 공을 높이 치하 하였지요 그래서 8명의 장수가 죽움으로 공을 세웠다 하여 지금도 팔공산(八公山)이라 부르고 있어요 그후 막강했던 견훤의 세력은 승승장구한 여세를 몰아 929년(경순왕 3년)에는 의성, 풍산 등의 여러 고을을 빼앗고 고창(古昌)즉 안동(安東)을 공격하여 왔지요 이때 고창군(古昌郡)의 호족이었던 권행(權幸) 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 세 분은 일신의 안전만을 위한다면 마땅히 견훤에게 항복하는 것이 옳겠으나 경애왕의 원수를 갚고 포악한 견훤으로부터 이 고장을 수호하기로 결의하고 태조 왕건에게 귀부 하였어요 이곳 지리에 밝고 용감무쌍 하였던 세분의 도움으로 왕건은 견훤을 낙동강가로 유인하여 대승함으로서 견훤(甄萱)은 8천여명의 군사를 잃고 대패하여 기세가 꺽였지요 그때 견훤과 합전교(合戰郊:현 안동시 송현동)에서 싸울때 큰나무를 묶어서 한 덩어리를 만들어 여러 사람이 어깨에 메고 이를 앞세워 진격하였다고 하지요 이 전승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정월 보름날을 기하여 나무묶음(동채)을 메고 싸움하는 놀이를 하였는데 이 놀이가 전래되어 그 유명한 "안동의 차전놀이" 가 되었지요 이 국운(國運)을 건 대전투에서 고려 태조를 도와 견훤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 세 분에게 태조왕건은 태사(太師)의 벼슬을 내렸는데 이 세분을 삼태사(三太師)라고 부르게 되었어요 삼태사는 권행(權幸)ㆍ김선평(金宣平)ㆍ장길(張吉) 세 사람을 가리키는데 모두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안동권씨ㆍ안동김씨ㆍ안동장씨의 시조들이지요. 이때부터 3대 가문은 안동을 대표하는 성씨가 되었는데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으며 조선조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 까지 권문세가(權門勢家)를 누리고 있어요 태사묘는 고려 성종 2년(983)에 삼공신묘라고 해서 만들어졌는데 조선 광해군 때인 1613년에 이곳을 새로 고치면서 태사묘라고 불렀지요 옛날에는 안동권씨들이 관리했었는데 지금은 삼태사의 후손들이 같이 관리하고 있다 하네요 태사묘는 경상북도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으며 보물각에는 삼태사의 유물이 있는데 모두 12종류 22개 보물이 있어요 그리고 세 사람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가 있는데 권태사와 장태사의 신도비는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있고 김태사 신도비는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지요 그럼 여기서 안동을 대표하는 3대 가문의 인재들을 소개하면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시조는 삼태사의 한분이신 권행(權幸)이며 고려시대에는 추밀원부사를 지낸 권수평(權守平)과 권위가 있지요 조선시대에는 권근,권람등 많은 인재가 배출 되었고 특히 임진왜란때 큰 공을 세운 권율(權慄)장군이 안동권씨 가문이지요 근대에 와서는 권정달과 권선택,권영길,권영세 전 국회의원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으며 배우겸 탈렌트 권상우도 안동권씨라 하네요 그리고 안동김씨(安東金氏)는 조선말 붕당 세력이나 세도정치로 유명하지요 안동김씨는 본관이 같아도 크게 둘로 나뉘어 구(舊)안동 김씨와 신(新)안동 김씨로 불리는데 이 둘은 서로 혈연 관계가 전혀 없는 가문이지요 여기서는 삼태사의 한분인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신안동김씨만 다루기로해요 신 안동 김씨로 유명한 인물로는 조선시대때 충신으로 김상헌, 김상용, 김조순이 있으며 김조순의 딸<순원왕후>은 순조와 혼인하게 되고 이때부터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시작되지요 또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金炳淵)이 있으며 구한말 갑오경장으로 유명한 김옥균(金玉均) 그리고 청산리 대첩의 김좌진(金佐鎭)장군과 그의 아들 김두한(金斗漢) 등도 있어요 독립운동가인 김가진(金嘉鎭·충청도 관찰사,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 김학규(金學奎·광복군 제3지대장), 김복한(金福漢·파리강화회의 독립청원, 옥사)등도 안동김씨라 하네요 그리고 안동장씨(安東張氏)의 시조는 삼태사의 한분이신 장정필(張貞弼)이 시조이며 그의 처음 이름이 장길(張吉)이지요 인물로는 조선개국 1등공신인 장사길(張思吉)과 그의 아들 장철(張哲)등이 있으며 화가 장득만(張得萬)은 인물화가로서 세조의 영정을 그렸으며 순국지사로 장태수(張泰秀) 우국 언론인 장지연(張志淵)도 있지요 근대에 와서는 시인 장만영(張萬榮) 또 언론인 장준하(張俊河)씨도 안동장씨라 하네요 이 외에도 안동 삼태사의 후손들중 훌륭하신 분들이 많으나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간략하게 소개하는것으로 끝을 맺을께요 -* (일송) *-


    ▲ 고려의 개국 공신인 권행, 김선평, 장정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태사묘 정문



    ▲ 보물인 삼태사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보물각과 주사건물



    ▲ 안중할머니와 안금이의 위패를 모신 안묘당



    ▲ 강당인 숭보당과 안동김씨, 권씨, 장씨 대종회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동·서재



    ▲ 병산전투 승리 이후 전승되어온 차전놀이의 용구를 보관하는 차전각



    ▲ 고려삼태사묘정비



    ▲ 좌는 고려태사권공(權公)묘비명, 우는 고려태사장공(張公)묘비명



    ▲ 고려태사김공(金公)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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