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싼게 비지떡

청정지역 2016. 11. 9. 15:43

    

      


▲ 종이에 싸서 비지떡을 주던 문경새재 주막집 ...


    ★ 싼게 비지떡 ★ 옛날 조선시대때 일이지요 경상도 지방의 몰락한 양반집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길을 나섰어요 괘나리 봇짐에 집세기를 신고 부지런히 잰 걸음으로 길을 재촉했지요 어느덧 새들도 자고 간다는 문경새재에 이르러 해가 저물고 말았어요 문경새재는 경상도 지방과 전라도 지방 사람들이 한양을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관문이었지요 선비는 문경새재 주막거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그곳에서 가장 허름한 주막집을 찾아 들었어요 " 주모! 하룻밤 묵어가려 하는데 객방은 있는지요? " " 호호 있구 말구요 ~ 어서 오세요 호호 " " 하루밤 묵어가려면 비용이 얼마나 되오? " " 호호 많이 달라면 많이 주시겠수? " " 험 ~ 험 ~ " 선비는 주머니 사정이 뻔한지라 헛기침만 하고 말았지요 몰락한 집안이라 연로하신 모친께서 삵바느질로 간신히 마련한 노자돈이므로 한양가서 쓸돈도 모자라는 형편이었지요 " 걱정 마시우 ~ 우리집처럼 허름한 곳을 찾아오는 선비들은 모두가 넉넉한 형편이 못되지요 아무걱정 마시구 하루밤 푹 쉬시고 주고싶은대로 주고 가시구려 ~ " " 주모 ! 정말 그래도 되겠소? " " 대신 반드시 과거시험에 급제하겠다고 약속이나 하시우 ~ " " 그야 내 평생 소원이 과거급제이니 최선을 다해 보리다 " 선비는 후덕한 주모를 만나 하루밤을 편한 마음으로 지내고 아침일찍 국밥 한그릇을 배불리 먹고 서둘러 길을 나서면서 " 주모 ! 노자돈이 조금밖게 없는지라 이것밖게 못 드리겠소 " 하면서 동전 서너닢을 미안하다는듯 건네주자 " 호호호 이거면 됐소 어차피 이문을 남기자고 하는 장사가 아니니 대신 과거급제 하겠다는 약속이나 꼭 지키시우 " 하면서 본전도 안되는 엽전을 받아들고 환한 웃움으로 선비를 안심시켰지요 주모는 사나이가 큰일을 위해 나서는길인데 환한 웃움으로 배웅해야 한다는 신념이 깔려 있었어요 " 고맙소!! 내 그 약속을 꼭 지키고 돌아오는길에 들리리다 " 하면서 막 길을 나서려 하는데 " 아참 !! 내정신좀 봐 ~ 잠깐 기다리시우 " 그러면서 부억에 들어가 창호지에 싼것을 들고 나와 " 보잘것 없는 것이지만 먼길 가시다가 출출하시면 이걸 드시우 잠시 요기는 될거유 " " 주모 ! 이 종이에 싼것이 무엇이오? " " 그 종이에 싼것은 비지떡 이라우 맛은 없지만 허기질때 드시면 요기는 될꺼유 " " 그래요? 싼게 비지떡이라 ~ 고맙소 내 이 은혜 잊지 않겠소 !! " 하면서 길을 나서는 선비는 코끝이 찡해오는것을 느꼈지요 하루밤 묵은 비용도 다 못주었는데 비록 비지떡일 망정 그 정성이 너무도 고마웠어요 선비는 길을 걸으면서 주모의 그 따뜻한 마음씨가 너무도 가슴깊게 스며들었지요 국밥값도 안되는 서너닢을 받아 들고도 언짢은 말한마디 없이 환하게 웃어주는 그 고운 마음씨가 선비의 마음을 더욱 저미게 했어요 "내가 급제하면 반드시 저런 어진 백성들을 위해 노력하리라 " 그런 다짐을 수백번도 더 되뇌이며 한양에 올라 과거에 급제 했다 하네요 한번도 만난적도 본적도 없는 지나가는 과객에게 아무 말없이 베풀어 주는 그 따스한 온정 빈곤한 과객이라는 것을 알고도 쾌히 하루밤을 재워주고 오히려 용기를 주는 모습에 많은 가난한 선비들이 그 주모를 칭송하게 되었지요 모든것이 풍족한 양반집에서는 가축의 먹이로나 쓰는 비지를 정성드래 떡으로 빗어 허기진 배를 채우게 하는 그 지혜 또한 남 달랐어요 먼길가는 길손에겐 그 비지떡이 천만금 보다도 더 소중하게 요긴했는지도 몰라요 " 싼게 비지떡 " 이 말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 졌다 하네요 그런데 요즘은 "싼게 비지떡" 이라는 이말이 값싸게 산 물건은 품질이 좋지않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지요 옛날에 그 소중한 의미와 유래는 모두 어디로 갔는지 .... 아무튼 이말은 조선시대때에 먼길가는 선비에게 '주모가 싸준 것이 콩비지로 만든 떡(비지떡)이다' 라는 말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네요 그밖에도 유래가 특이한 것들이 있어요 "개판 오분전"이란 말도 있지요 이는 질서 없이 어수선하고 복잡한 모습을 이르는 말로 쓰이는데 '개판'이란 가마솥 뚜껑 판대기를 이르는 말이지요 한국전쟁(6.25전쟁)때 "식사 배식을 시작한다"에서 유래된 말로 당시에는 식사 배식을 시작 할때면 개판 오분전(가마솥 판자(개판)를 열기 오분전)이라고 외쳤는데 그말을 들은 굶주린 사람들이 먼저 먹으려고 질서없이 아수라장을 만드는 모습을 현재에 이르러 "개판 오분전" 이라는 말로 쓰인다고 하지요 원래의 뜻은 "식사배식 5분전"이라는 뜻이지요 또 가을이 되면 "고독하다"는 말을 많이 쓰고 있어요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낙엽이 포도위를 딩굴면 왠지모를 쓸쓸함을 느끼지요 이럴때 사람들은 고독을 느낀다고 하지요 그런데 고독(孤獨)은 한자어로 '외로울 고(孤)자와 홀로 독(獨)자를 쓰지요 사전적 의미로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하다"라고 표기되어 있어요 그런데 고독의 진짜의미는 부모를 여의고, 짝을 잃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 하네요 그래서 지금도 '고아(孤兒)'니 '독신(獨身)'이니 하는 말을 쓰고 있어요 그러니까 '고아'와 '독신'을 겸하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때가 진실로 고독한 때인 것이지요 그러니 함부로 "고독하다"고 말하면 안된다 하네요 그래요 어찌보면 언어도 하나의 생명체로서 탄생, 발전, 소멸의 단계를 거친다고 하지요 어떤 말이 쓰이다가 세월이 흘러 전해지는 과정에서 시대상과 분위기에 따라 뜻이 첨가, 변질,삭제되는 부분이 있게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많은 말들이 왜곡되거나 변질되어 사용되기도 하지요 다시한번 "싼게 비지떡"이란 말을 상기(想起)해 보도록 해요 -* (일송) *- (이글은 작년에도 한번 올렸던 글이지요) ★ 우리나라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문경새재 ...


    문경새재(聞慶-)는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재이지요 조령산은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에 있는 높이 1,017m의 산인데 새재 또는 한자어로 조령(鳥嶺)이라고도 하지요 이 말은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어요 고대에는 ‘초점’(草岾)으로 불렸는데 이를 한글로 옮기면 새재가 되지요 이후 새재를 한자표기로 변경하면서 조령(鳥嶺)으로 표기하였어요 조령(鳥嶺)은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어요 임진왜란 이후에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의 3관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하네요 ...




    ▲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선정되었던 이 길은 고려시대부터 서울 부산간 최단거리로 옛사람들의 애환이 그대로 담겨있는 길이지요 이 옛길에는 총3개의 관문이 있어요 ...



    ▲ 아름다운 주차장길 ...



    ▲ 제1관문 앞길 ...



    ▲ 제1관문의 이름은 주흘관(主屹關)이지요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인데 임진왜란 이후, 서울로 향하는 길에 관문설치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설치되었어요...



    ▲ 아름다운 성벽 ...



    ▲ 제1관문에서 제2관문 가는길(3Km) ...




    ▲ 옛선인들이 건너던 다리를 재현 했어요 ...



    ▲ 이 바위는 '지름틀바우'이지요 기름을 경상도 사투리로 '지름'이라고 하는데 기름을 짜는 틀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졌다 하네요 ...




    ▲ 아름다운 계곡과 맑은 물 ...



    ▲ '조령원터(鳥嶺院址) 원(院)이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지방으로 출장가는 관리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시설을 말하지요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운영되었다고 하네요...



    ▲ 조령원터 내부 바깥에서는 수직으로 쌓아 올리고 안에서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데 유사시에는 성벽의 기능을 했다 하네요...



    ▲ 조령원터 내부인데 건물은 남아있지 않고 집터만 남아있어요 사진의 건물은 임시로 재현한 모습이지요 ...




    ▲ 조선시대 옛길과 도둑놈 바위 ...





    ▲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에 있는 주막촌 ...



    ▲ 교귀정(交龜亭) 저곳은 조선시대때 새로이 부임하는 경상감사의 업무 인수인계를 하던 교인처(交印處)라 하네요 건물은 후대에 복원된 것이지만 교인처(交印處)는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곳이라 하는군요 ...



    ▲ 안내표지판 제2관문까지 1Km 남았네요 ...



    ▲ 조곡폭포 ...



    ▲ 제2관문(조곡관) 제2관문에서 제3관문까지 3.5Km ...



    ▲ 제3관문(조령관)...



    ▲ 등정을 마치고 발을 씻는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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