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기우제와 기청제

청정지역 2017. 6. 24. 20:40

         

    ♣ 기우제(祈雨祭)와 기청제(祈請祭) ♣

    한열(旱熱)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는 심한 가뭄에는 심한 더위가 온다는 뜻이고 또 한염(旱炎)이라는 말도 있지요 이는 가물때의 더위는 불 같은 더위가 온다는 뜻이지요 여기에 수반되는것은 한재(旱災)이지요 가뭄에는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는 의미 이지요 요즘 하늘은 높고 땅은 불타고 있지요 기상청에서는 100년만에 온 가뭄(재앙)이라 하고 있어요 이대로 간다면 인간의 생명수인 식수마져도 고갈될 처지라 하네요 역사이래 우리 인간들은 지혜를 모아 가뭄에 대처해 왔어요 그래서 많은 제언(堤堰)과 보(洑)를 만들어 흘러가는 물을 보관하여 가뭄에 대처했지요 그러나 자연에 대항하는 인간의 힘은 미약하여 이 시설들만으로는 가뭄에 대응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농민들은 두레로 둠벙에 고인 물을 품어 올리고 조그만한 샘의 물을 퍼 나르는 일에 매달렸지요 이렇듯 농민들은 가뭄을 극복하기 위하여 절박한 수단과 도구을 동원해야만 했어요 인공적인 수리시설이 미비했던 예전에는 적당한 때에 적절한 양의 비가 얼마나 오느냐에 따라서 배부름과 배고픔이 교차되었지요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에 큰 피해가 예상될때 임금은 물론 지방의 수령과 농민이 하나가 되어 비를 비는 제사를 지냈어요 또는 무당을 불러서 기우하고 장터를 냇가로 옮겨 시장를 열어서 기우하기도 했지요 특히 모내기가 한창 벌어지는 음력 5월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하천이나 보에 저장된 물을 용두레, 두레, 맛두레, 무자위 등으로 온동네가 밤낮없이 물을 펐지요 용두레는 배(船)와 같은 모양으로 만든 두레로서 통나무를 길게 파낸 것과 나무 판자로 바닥과 양옆면을 이어 붙인 것이지요 중간 부위에 줄을 매고 이 줄을 길다란 자연목으로 만든 삼각지주에 연결시킨 다음 작업을 할때에는 삼각지주에 매달린 용두레의 손잡이를 잡고 앞뒤로 밀었다 당겼다 하면서 물을 퍼올렸지요 가뭄은 논밭을 말라붙게 하고 작물을 고사(枯死)하게 만들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옛부터 빈번하게 가뭄이 찾아 들어 왔고 그때마다 농사가 망쳐지고 사람들은 굶주렸으며 민심이 피폐해지곤 했어요 모를 심기 위해 혹은 심어 놓은 모가 타지 않도록 하려고 밤낮으로 물을 푸면서 온갖 노역을 다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마을 부근에 있은 산정상이나 하천변에 제단을 마련하고 음식을 장만하여 정성껏 온동리가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지요 옛날에는 큰 한발이 계속되면 나라에서 임금님이 제주(祭主)가 되어 기우제를 지냈어요 또한 임금이 나라를 잘못 다스려 하느님이 벌을 받아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하여 임금님이 몸소 음식을 전폐하고 궁궐에서 초가로 옮겨 거처하였고 죄수를 석방하기도 하였지요 민가에서는 명산의 산봉우리나 큰 냇가에 제단을 만들고 그 일대를 신역(神域)으로 정하여 부정한 사람의 통행을 금하였고 마을 전체의 공동행사로 기우제를 지냈지요 댐이 건설되고 수리시설과 양수시설이 완비된 오늘날에도 비가 오지 않으면 가뭄으로 걱정과 고생을 하는데 하늘만 바라보며 농사를 짓는 그 옛날이야 말하지 않아도 가히 짐작이 가는 일이지요 그래서 가뭄에 단비가 내리면 우산도 쓰지 못하게 하고 비를 그대로 맞는 풍습이 생겨 났지요 우리말에 "물쓰듯 한다"라는 말이 있어요 그 만큼 우리민족은 물을 풍부하게 사용했던 거지요 그러나 어느날 부터인가 우리나라도 물 부족국가로 분류되어 말았어요 엄밀히 말하면 물관리부족국가 이지요 그 이유는 강수량은 풍부한데 물관리를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장마철 4대강에 홍수가 나듯 넘처 흐르는 물을 그냥 바다로 흘러보낸다는 것이지요 독일의 라인강에는 86개의 보가 있어 여름철에 내리는 물을 그득그득 관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4대강에 고작 16개의 보를 만들어 이제사 물관리를 시작하고 있지요 그런데 막대한 자금을 들여 만든 이 보를 파괴하여 원시하천으로 만들자고 하고 있으니 정말 걱정이 아닐수가 없어요 옛부터 치산치수(治山治水)라 했지요 그 나라의 흥망성쇠는 치산치수에 있다 했어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칸 태운다고 녹조라는 것은 상류에서 흘러드는 축산페수가 주 원인인데 하수종말처리장에는 신경 쓰고않고 물관리를 할수있는 4대강 보를 파괴하려 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없는 발상이지요 이런 논리라면 청평댐, 의암댐, 충주댐 모두를 파괴하여 원시하천으로 만들어야 하지요 전세게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가뭄이 심하여 물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때에 앞으로 기존 보의 숫자 보다도 더 많은 보를 만들어야 함에도 기존에 만든 보를 파괴하여 원시하천으로 만들자고 하고 있으니 그 환경단체 사람들은 대체 어느나라 사람들인지요? ▲ 가뭄으로 물마른 강원도 동강사진 ...


    비를 바라는 것은 기우제(祈雨祭)이고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것은 기청제(祈請祭)이지요 기우제와 반대로 기청제도 지냈지요 한달 이상 계속되는 장맛비와 폭우를 그치게 하고 백성들이 평안하도록 기원하는 기청제도 있었지요 장맛비와 폭우가 계속되어 흉년이 예상될 때에 조선시대에는 도성의 4문, 곧 숭례문(崇禮門),흥인지문(興仁之門) 돈의문(敦義門),숙정문(肅靖門)과 지방의 성문에서 기청제(祈晴祭)를 거행 했어요 국장(國葬) 등의 특별한 큰 행사가 있을 경우 종묘와 사직에서 날씨가 맑기를 빌기도 하였지만 수재(水災)를 당했을 때에도 이를 기양(祈禳;재앙을 쫓고 복을 기원함)하기 위해서 기청제를 거행하였지요 기청제는 원래 재앙을 막는다고 하여 영제(?祭)라고 하였어요 즉 수많은 사람들이 문을 통해 출입 왕래하며 문에서 외부의 적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성문에서 재앙을 막는 기청제를 지낸 것이지요 계속 비가 내리면 국가에서 기청제를 지냈지만 이것이 농경과 매우 밀접하기 때문에 가뭄을 두려워하여 주로 입추(立秋) 이후에 많이 거행하였어요 우리나라에서 기청제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보이는데 조선시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르면 한성부에서는 사대문에서 지방에서는 성문에서 기청제를 지냈다고 하지요 처음에는 성문안에서 기청제를 지냈으나 동문(同門, 흥인지문)이 물에 침수된 이후로는 문루에서 거행하였어요 기청제는 비를 조절한다는 동서남북 각 방위의 산천신(山川神)에게 지냈는데 기청제는 사흘 동안 지냈으며 그래도 비가 그치지 않으면 3차에 걸쳐 다시 행하고 최종적으로는 왕이 직접 종묘나 사직에 나가 기청제를 지내기도 했어요 제사 의식은 청행사(請行事), 헌관사배(獻官四拜), 분향(焚香;三上香), 헌작(獻爵), 독축(讀祝), 철변두(徹?豆), 헌관사배(獻官四拜), 예필(禮畢), 예감(?坎)의 순서로 진행하였지요 물과 관련된 조선시대 국가제례로서 정기적으로 상제(上帝)를 대상으로 한 기우제에 비해 기청제는 수재(水災) 때에만 산천신을 대상으로 한 비정기적인 제사였어요 그래서 기청제는 작은 제사[小祀]로 간주되었고 또한 제의 절차가 단순하여 시행의 건수도 적었지만 농경을 기반으로 하였던 조선시대에서 수재에 대처하여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였던 세시의례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우리 옛말에 물을 헛되이 쓰는자 저승에 가면 자신이 버린물을 모두 먹어야 한다 했지요 그만큼 물은 소중히 절약하고 아껴쓰라는 말이지요 기름보다 비싼 물 이 물의 소중함을 알아야 하지요 운예지망(雲霓之望)이란 말이 있어요 큰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라듯 그 희망이 간절함을 비유하는 말이지요 오늘따라 가마솥 같은 폭염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네요 -* (일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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