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야화) 황진이/야사하

청정지역 2015. 8. 6. 08:20

 

 

 

 

 

 

본명은 황진(黃眞, 1511~1551), 기명(妓名)은 명월(明月)

그녀가 남긴 시조가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이 될 정도로 뛰어났던,

조선 중종 때의 시인이자 시대를 풍미한 명기(名妓)이며,

송도(개성)의 양반 황진사의 서녀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기생이 되었다.

타고난 절색에 명창이었으며 시재(詩才)에도 능해 당대 최고의 명기로

여러가지 일화를 남겼다.

 

 

 

[황진이와 소세양]

 

황진이의 유일한 사랑을 받은 판서 소세양(蘇世讓)과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소세양과 한달간의 '계약사랑'을 마치고 서로 율시를 나누며

아쉽게 헤어집니다 

 

*소세양(蘇世讓, 1489~1562)

자는 언겸(彦謙)이며 호는 양곡(陽谷)이다.
문명이 높고 율시에 뛰어났으며 송설체를 잘 썼다.
대제학·이조판서·형조판서·병조판서 등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황진이와 소세양의 일화는 임방(
, 1640~1724)

<수촌만록(水村漫錄)> 등에 전한다.

 

당대의 문장가이기도 한 蘇世讓 친구들에게 큰소리 치기를

황진이가 제 아무리 재색을 겸비하여 송도 장안에 이름이 높다 하고

또한 그녀와 한번 사랑에 빠지게 되면 헤어나질 못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딱 한 달만 그녀와 사랑을 나눈 다음

단 하루라도 더는 머물지 않을 것이며,

아무 미련 없이 깨끗이 끝내곘다고 약조했습니다

급기야 송도에 온 소세양은 황진이에게

 

(석류나무 류) 단 한자만 편지지에 적어 띄웠지요.

이를 접한 황진이는 그 훈과 음인 碩儒那無遊(석류나무유)

[큰 선비가 여기 있거늘 어찌 놀지 않겠는가]라고 알아차리고

붓을 들어 (고기 잡을 어) 한자만 써서 바로

소세양에게 답장을 보냈지요.

이를 받아 든 소세양도 훈과 음을 高妓自不語(고기자불어)

[높은 기생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라 적으니

그때까지만 해도 기세당당 하던 그도 어쩔 수 없이

황진이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었답니다.

 

주야를 가리지 않으며 운우지정을 나눈 지 한 달,

처음 만난 게 엊그제 같은 소세양은 꿈같은 한 달이 바로 오늘이라

누각에 앉아 황진이와 이별주를 나누는데,

이별의 슬픈 기색을 전혀 나타내지 않던 황진이가 사랑하는

당신과의 이별인데 어찌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떠나 보내실 수 있겠나이까

청컨대 졸구 하나 올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라 말하자

소세양은 흔쾌히 허락하니

황진이는 목청을 가다듬고 천천히 시를 읊었지요.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 소판서 세양을 보내며

 

月下梧桐盡 (월하오동진    달빛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想中野菊黃 (상중야국황    서리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 (누고천일척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人醉酒千觴 (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 (유수화금냉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梅花入笛香 (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와라

明朝相別後 (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情輿碧波長 (정여벽파정   사무치는 정 푸른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소세양은 황진이의 시를 다 듣고 나더니 무릎을 탁 치고 나서

내가 황진이를 이대로 두고 간다면 나야말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냐며

그토록 호언장담했던 친구들과의 약조마저 깨버리고

황진이 곁에 더 머물렀다고 전합니다.

 

 

그 후 황진이는

그녀 곁을 떠나 한양으로 간 소세양과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녀의 가슴속에 늘 행복한 만남으로 간직하며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당대의 콧대 높은 문장가이기에 앞서

조선 여인의 풍모를 보여주는 듯

소세양을 못내 그리워하는 평범한 여인이었지요.

황진이는 그녀의 시비 동선이를 시켜 한양의 소세양에게

한시 야사하(夜思何)를 보내고 그리운 마음을 달랩니다.

 

 

夜思何(야사하)  

 

蕭蓼月夜思何事 (소요월야사하사)   소슬한 달밤이면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寢宵轉轉夢似樣 (침소전전몽사양)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밤이 꿈만 같고

생시인 것 같네요.

問君有時錄忘言 (문군유시녹망언)   님이여 제가 드리는 말도 적어보시나요

 

此世緣分果信良 (차세연분과신량)   이승에서 맺은 인연 정녕 믿어도 될런지요

 

悠悠憶君疑未盡 (유유억군의미진)   멀리 계신 님 생각 끝없이 이어 지내요

 

日日念我畿許量 (일일염아기허량)   하루 하루 이 내 몸을 그리워 하시나요

 

忙中要顧煩或喜 (망중요고번혹희)   바쁠 때 나를 돌아보라 하면 괴로운 가요

아니면 즐거운가요

喧喧如雀情如常 (훤훤여작정여상)   참새처럼 지저귀어도 여전히 정겹게

들리시나요

 

황진이가 진정으로 사랑했다던 소세양에게 보낸 7언 율시

夜思何(야사하) 혹은 '蕭蓼月夜'(소요월야)라고도 알려진 황진이의 한시 입니다.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가수 이선희의 명곡 '알고 싶어요'의 가사는

황진이의 한시 夜思何(야사하)를 의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알고 싶어요]

 

달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내가 많이 어여쁜가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주세요

 


 

[황진이의 남자들]

 


첫 번째 옆집 總角(총각)입니다.
황진이를 짝사랑하여 상사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황진이의 어머니는 그 총각을 절대로 만날 수 없게
하여서 총각은 상사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을 지나가다 땅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진이가 속저고리를

상여에 덮어주었더니 움직였다고 합니다.
황진이는 왜 그 남자가 죽었을까 생각하며

妓生(기생)이 됐다는 말이 있습니다.

 

 
두 번째 남자는 개성 유수 송공입니다.
대부인 연회석에 황진이를 초대하였는데
그때 여러 사람들이 황진이의 빼어난 모습을 보고 반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황진이가 유명해지게 되는데요,

황진이는 송공과 그 전부터 함께 지낸 사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 남자는 선전관 이사종입니다.
사신으로 송도를 지나가다 천사원 냇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아주 출중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진이는 그 노래에 빠져 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황진이가 "개성에 이사종이라는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데 그 사람인가 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알아보게 하였는데 정말 이사종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진이가 찾아가 서로 마음속에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는

이사종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여러 밤을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마음에 들었는지 이사종에게 "내 마땅히 당신과 6년을

살아야 겠소"라고 말하고는 이사종의 집에 3년 동안 먹고 살 돈을

가져가서 살고.3년 후 이사종을 자신의 집으로 대려와 살았으며

6년이 지난 후에는 깨끗이 헤어졌다고 합니다.

이걸 보면 황진이가 얼마나 자존심이 강했으며 당당한

여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계약결혼의 시초이네요.

네 번째 남자는 양곡 소세양 입니다.
그 남자는 남자가 여색에 혹함은 남자가 아니다! 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내가 황진이와 30일을 지내고 깨끗이 끝내겠다. 라고

큰소리 쳤다고 합니다.

황진이와 30일을 지낸 후 황진이가 송별소양곡을 불렀는데요,

그걸 듣고 소세양은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황진이와 함께 며칠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 남자는 왕족 벽계수입니다.
벽계수는 황진이가 명사가 아니면 만나주질 않아 고민하다가

친구인 이달에게 물어 꾀를 내어 황진이 집 근처 정자에서

노래 한 곡을 크게 부르고 황진이가 따라와서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갔다고 합니다.

그 때 황진이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망공산 할제 쉬어간들 어떠리"

라고 읊었다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벽계수가 뒤 돌아 보다가 말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진이가 명사가 아니라 풍유랑이라 말하고 돌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벽계수 '낙마곡'으로도 유명합니다.

여섯 번째 남자는 이생입니다.

황진이가 말년에 금강산 유랑을 하고 싶어 하여 동행을 청해서

함께 금강산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갈 때 이생이 먹을 것을 짊어지고 갔는데 여행도중 다 떨어져서
곳곳의 절을 돌아다니며 황진이가 몸을 팔아 음식을 얻었다고 합니다.

여행이 끝나고 미련도 없이 헤어졌다고 합니다.

일곱 번째 남자는 지족선사입니다.
그는 면벽수련 30년으로 유명했는데요,
그래서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찾아가 유혹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용모가 빼어났던지 면벽수련 30년을 깨고

파계승이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는 황진이가 정말로 사랑한 사람은

바로 서경덕인데요,

황진이는 서경덕의 학문이 높음을 듣고

서경덕에게 가서 유혹하였으나
넘어오질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고 함께 오랜 시절을 지냈으나

서경덕은 의연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진이가 감탄하여

"지족선사는 30년 면벽수련에도 내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서경덕은 함께 오랜 시절을 지냈으나 끝까지

나에게 이르지 않았으니 진정 성인이다."라고 말하고

서경덕에게 제자로 받아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제자가 되었고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

[송도삼절]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황진이는 남성위주의 시대를 외려 휘저었고

섹스는 언제나 본인이 선택하고 선도했으나

헤프지 않았으며 시화에 능하고 풍류를 알아

서양 및 중국의 미녀가 단순히 미모로

권력자에게 몸을 맡기고 이름을 날린 것과는

차원이 다른 女人이었습니다.

그래서 후일의 남자들도 그녀를 그리워하며

"자는가?  누웠는가?"라고 그녀를 흠모하였답니다.



그녀를 사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은 마을 청년의 상여가

집 앞에 멈추어 움직이지 않은

벽계수를 유혹하여 말에서 떨어지게 한 일.
30
년 면벽의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 시킴.
화담 서경덕 선생을 유혹하려다 실패하고

감복하여 제자가 된 일. 


이처럼 학자, 문인 등 일류 명사들과도 많은 교류를 하였는데

그와 교류한 인물로는, 30년 면벽수련으로 유명한

지족선사(萬錫禪師), 대학자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종실(宗室) 벽계수(碧溪水), 판서(判書) 소세양(蘇世讓),

선전관(宣傳官) 이사종(李士宗),
재상의 아들 이생(李生) 등이 있으며 남사당패와도

오래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만월대 회고(滿月臺懷古)>,
<
박연폭포(朴淵瀑布)> <봉별소판서세양(奉別蘇判書世讓)>

7수의 한시와

<동짓달 긴긴밤을 한허리를 베어내어>,
<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 6수가 있으며

우리 문학사상 가장 빼어난 작품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말년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금강산을 비롯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만행(萬行)하며 세상을 둘러보았으며,

"나로 인하여 세상의 남성들이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니...

이 몸을 길가에 묻어 짐승과 벌레가

먹게 하여 타의 경계로 삼도록 하세요" 라는

유언을 남기고 명을 달리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은 어데 두고 백골만 무쳤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위 시조는 임제[林梯 : 백호(白湖)]가 평안도사로 임명되어

부임하러 가는 길에 평소 보고 싶었던 황진이[黃眞伊]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고인이 되어 그의 묘를 찾아가 시조를 지은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호[1549-1587 ; 39]는 당파의 이전투구에 어울리지 않고

법도[法度] 밖의 인간으로 여겨 사귀기를 꺼려하였지요.....

황진이와 서로 사귀었다는 설도 있고, 반대로 기회가 닿지 않아 

생전에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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