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야담) 사기꾼 골탕먹이기

청정지역 2015. 8. 18. 16:58

 

 

 

가난하지만 법 없이도 사는 착한 농사꾼 안서방이 장에 가서 눈을 질끈 감고 배 세개와 꿀 한단지를 샀다. 심한 고뿔로 몸져 누운 아내에게 꿀을 넣은 배숙을 해 먹이기 위해서다.

아내를 위해 먹고 싶은 막걸리 한잔 안 마시고 비싼 꿀을 사왔는데 이럴 수가! 위만 살짝 꿀이고 그 아래는 전부 조청이 아닌가.

 

안서방은 가짜 꿀단지를 안고 20리 길을 달려 장으로 갔지만 그 꿀장수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다음 장날 아침, 안서방은 다시 장으로 갔다. 눈을 부릅뜨고 온 장터를 샅샅이 뒤진 끝에 마침내 주막에서 나오는 그 사기꾼을 잡았다.

“여보시오, 지난번에 당신이 판 건 가짜 꿀이오. 당장 내 돈 돌려주시오.” 덩치 큰 사기꾼은 술 냄새를 풍기며 우습다는 듯 안서방을 째려봤다. “나는 당신한테 꿀 판 적 없어. 저리 비켜.” 왜소한 안서방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마터면 가짜 꿀단지마저 깨뜨릴 뻔했다. 사기꾼이 성큼성큼 장터를 빠져나가는 걸 안서방은 뒤를 쫓아가 앞길을 막았다. “나하고 당장 사또 앞으로 갑시다.” “이거 오늘 재수 옴 붙었네.” 걸음을 멈춘 사기꾼이 발길질을 하자 꿀단지가 박살이 나고 안서방도 나뒹굴었다.

 

오기가 발동한 안서방은 말 없이 스무걸음쯤 거리를 두고 사기꾼의 뒤를 밟았다. 사기꾼이 힐끔힐끔 뒤돌아봤지만 안서방은 모르는 척 먼 산을 보며 그 간격을 계속 유지했다.

그때 저만치서 기골이 장대한 텁석부리가 그의 아내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안서방이 갑자기 그 부인을 보고 “부인, 자색이 곱구랴. 내 첩으로 들어와 팔자 한번 고쳐 보지 않겠소?” 하니 여자는 깜짝 놀라 입을 못 다물었고, 텁석부리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에서 불을 뿜으며 솥뚜껑 같은 손으로 안서방을 덮쳤다. 하지만 안서방은 몸은 왜소하지만 몸놀림이 재빨랐다. 몸을 뺀 안서방이 냅다 뛰기 시작하자 벌겋게 달아오른 텁석부리가 따라왔다. 주먹다짐엔 언제나 밀리지만 달리기는 자신 있어 안서방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계속 도망을 쳤다. 그러다가 저만치 앞서가던 가짜 꿀 사기꾼 옆을 지나며 큰소리로,

 

“형님도 빨리 도망가시오, 저 불한당 같은 놈이 나를 잡아 죽이려 해요.” 그 말을 끝내고 안서방은 바람처럼 달아나 버렸다.

 

텁석부리는 걸음을 멈추고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사기꾼의 멱살을 잡았다.

“네놈을 죽이면 네놈 동생이 송장을 치우러 오겠지.”

“어어, 왜 이러시오.”

사기꾼은 영문도 모른 채 초주검이 됐다.

산 위 소나무 뒤에서 사기꾼이 묵사발이 되는 것을 지켜보던 안서방은

텁석부리가 고개 너머로 사라진 후 반송장이 된 사기꾼의 주머니에서

꿀값을 빼내 휘파람을 불면서 산 넘고 물 건너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