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허균이라는 사람

청정지역 2017. 1. 8. 18:42

                                                                         

 

 

허균이라는 사람

 

 

 

사회모순을 비판한 시대의 이단아!!
명가의 후예로 태어났지만 자유분방한 삶과

파격적인 학문으로 굴곡진 인생을 살았던 정치인!!
우리나라 대표 여류 문인인

허난설헌의 동생이자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

허균은 호가 초당인 허엽(허엽은 강릉부사로 재직중

천일염이 생산되지 않는 강릉의 특성을 고려하여

소금대신 동해의 깨끗한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하여

 

초당 두부를 만들었으며 강릉시 초당동에는

허엽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있습니다)의 3남중

막내로 태어났고 부친인 허엽은 동인의 수장을 지낸

거물 정치인이며 형인 허성은 이조판서등을 역임하며

동인에서 분파된 남인의 당대표 역할을 했습니다

허균은 어려서 난설헌과 함께 형 허성의 친구인

이달의 문하에서 수학 했는데 이달은 최경창,

백광훈과함께 조선중기 삼당시인(당시엔

송나라풍의 시를 즐겨썼는데 이들은 낭만적이고

 

풍류를 강조한 당나라풍의 시를 즐겨썼고

서자라는 공통점이있습니다)의 한사람으로 꼽힐만큼

시재가 뛰어났지만 서자라는 신분의 제약때문에

뜻을 펼치지 못했는데 홍길동이 서자인것은 허균이

스승의 불행을 작품으로 형상화 한것이라 하겠습니다

허균은 당시 배척대상이던 불교에 호의적 이었으며

심지어 승려,서자들과 교류했으며 기생인 매창
(황진이와 쌍벽을 이룹니다)과 정신적인 교감을 할정도여서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인해 파직과 복직을 반복했습니다

 

'남녀간의 정욕은 하늘이 준것이며
남녀유별의 윤리는 성인의 가르침이다
성인을 따르느라 하늘을 어길순없다'
그의 생활태도를 짐작할수 있는 말입니다


(그당시에는 '영웅은 호색'이라고 했으니 그닥

거리낄게 없겠지만 풍류를 많이 즐기신듯 합니다 )


1613년 이른바 '칠서지옥' 사건으로 자신이

연루될 위기감이 감지되자 대북의 실력자인

이의첨에게 몸을 의탁하고 이후 형조판서등을 지내며
정권과 밀착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대북의 선봉장이되어

인목대비 폐위를 주장하게 되는데요
(당시 선조의 아들이 14명인데 정실소생은 인목대비의

소생인 영창대군만이 적통이고 나머지는 후궁소생으로

광해군 또한 아버지인 선조와 마찬가지로

적통이 아니란 이유로 엄청난 콤플렉스를 느낍니다)


이 주장은 같은 북인인 정온, 남인계인

이원익,허균의 정치동반자이자 절친인 기자헌조차 반대를 합니다
결국 인목대비는 폐위되어 서궁에 유폐되었지만

 허균은 다른 정치인 들로부터 배격을 당했고 동지인

기자헌의 아들인 기준격에게 영창대군을 옹립하여

역모를 꾀한다는 혐의로 고발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영창대군은 불과 9세의 나이로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방안에 가두어두고 불을 때게해서 죽임을 당합니다)
허균의 호는 교산인데 교는 용이되지 못한
이무기를 뜻합니다


허균은 홍길동과 같은 이상향을 꿈꾸었으나
끝내 승천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이상과 현실의 갭이 커서 어려운것 같습니다)

이화우 흩뿌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이시조는 명기 매창의 시입니다
누구나 교과서에서 한번쯤은 읽어본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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