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홍랑각시의 슬픈사연

청정지역 2017. 4. 28. 20:35

돌배에 실려온 보살상과 무쇠사공 2구


홍랑각시의 슬픈사연

시기는 조선 15대 임금인 광해군 2년(1610)때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은 바다를 접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명나라 관원들이 들이 닥쳤다.
이유는 자기나라의 황제가 후궁을 구하기 위해 조선까지 왔다는 것.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유지해 온 조선 조정에서는 이같은 행패를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홍법마을은 삽시간에 민심이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 군주의 후궁을 이렇게 징발해도 된단 말인가.

이건 우리나라 처녀를 조공으로 바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명나라 관원들은 마을을 샅샅히 뒤지며 미모가 출중한 처녀를 찾아 나섰다.
홍법리 마을 어른인 홍초씨를 비롯한 마을 장로들은 동네 아낙들을 숨기는 한편

머리를 올려 혼인을 했다고 하면서 처녀들의 징발을 최대한 막았다.

하지만 명나라 관원들의 횡포는 격심해졌고,

마을 처녀들이 한 두명씩 발각돼 잡혀가기에 이르렀다.
이 동리에서 미모가 출중하기로 이름 난 홍만석의 딸 홍랑처녀 역시 명나라 관원들의 표적이 됐다.

“홍법리에는 절세미인 홍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디로 갔느냐?
만일 홍랑을 내놓지 않으면 천자의 명을 어긴 죄로 3족을 멸하고 마을을 폐촌시키겠다.”
통곡소리가 마을을 뒤덮고 명나라 관원들이 최후통첩을 내려졌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내가 나가지 않으면 마을 전체가 화를 입게 되었구나.”
마을이 쑥대밭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던 홍랑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내가 결단을 내려야겠다.”
홍랑은 마을에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지 마시오.

내가 천자의 후궁으로 갈 터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풀어주시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화를 면하게 됐고,

홍랑은 서해바다를 통해 명나라로 가게 됐다.

홍랑은 조선을 떠나면서 간원했다.
“내게 소원이 있소. 모래와 대추, 그리고 물 서 말을 가져가게 해 주시오.”
이렇게 하여 홍랑은 머나 먼 명나라로 향했다.
홍랑의 미모를 본 명나라 황제는 곧 후궁으로 삼았다.

하지만 홍랑은 명나라에 도착하면서부터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전폐하며 이 부당한 조선여인 징발에 항거하기 시작했다.

홍랑은 어디를 가더라도 명나라 땅을 밟지 않겠다는 각오로 조선에서 가져간 모래를 뿌리며 다녔다.
명나라 음식도 먹지 않고 정 배가 고플 때는 조선에서 가져간 대추를 먹었으며, 

목이 마르면 조선에서 가져간 물을 먹었다.

당연히 홍랑은 여위어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몸에 병이 들었다.

홍랑은 매일같이 고향 생각과 집 생각을 했고,

불교 교리를 읽으며 100일기도에 들어갔다.

“나는 이 명나라에서 죽기를 각오했다. 부디 내 목숨이 없어지더라도 보살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이다.

부디 황제는 이 부당한 처사를 참회하고 다시는 이런 악업을 짓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먹을 것이 바닥난 홍랑은 며칠 지나지 않아 세상을 뜨고 말았다.

홍랑이 죽은 지 3일만에 황제는 이름모를 병을 얻어 자리에 눕고 말았다.
알 수 없는 병을 얻은 황제는 백약이 무효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제의 꿈에 홍랑이 나타났다.
“폐하, 참회하십시오. 저를 고향으로 보내주시고 앞으로 어진 임금이 되어 주세요.

그래야 당신의 병도 낫고 나라도 평안해질 것입니다.”

“어떻게 너를 고향으로 보낼 수 있겠느냐?”

“예, 저의 혼이 탈 배를 돌로 만드시고 열두 명의 무쇠사공을 만들어 태우십시오.

그리고 정성을 다해 저의 모습이 담긴 보살상을 만드십시오. ”

“그렇게 하겠다.”

꿈에 서 깬 황제는 홍랑이 시킨대로 어명을 내렸다.
“여봐라, 나라 안에서 가장 이름 난 석공들과 철공들을 불러

이번 일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

“예.”

명 황제는 자신도 100일기도를 하며 홍랑의 영가가 천도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황제의 100일기도가 회향되던 날 돌배와 보살상,

그리고 무쇠로 만든 12구의 무쇠사공이 만들어졌다.

마침내 돌배가 바다에 띄워졌다.
몇날 며칠을 바다에서 출렁이던 돌배는 마침내 지금의 경기도 화성군 홍법리에 당도했다.
홍랑의 영가가 고향에 당도한 것이다.

돌배가 도착하기 전 홍법마을의 남양홍씨 문중 원로 3명은 똑같은 꿈을 꾸었다.
“저는 홍랑입니다. 제가 며칠 후 홍법마을 앞 바다에 도착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보살상과 무쇠사공이 있을 것이니 절을 지어 봉안해 주십시오.”

꿈을 꾼 원로들이 홍법리 마을 바다에 가 보니 꿈에서 본 것과 같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
“이럴수가!”
마을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돌배에 보살상과 무쇠사공을 내렸다.

하지만 10구의 무쇠사공과 돌배는 바다에 가라앉고 2구의 무쇠사공과 보살상만 건져낼 수 있었다.

이후 홍씨문중에서는 조선 광해군 3년(1611) 3월에 홍법리 바다가 보이는 곳에
‘홍랑보살’과 ‘무쇠사공’을 봉안할 절을 짓고 홍법사라고 불렀다.



홍법사에는 현재도 보살상과 무쇠사공이 원형모습대로 전하고 있으며

몇 년전에는 ‘홍랑각’을 지어 홍랑의 넋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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