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 좋은글

조선시대 서울 집값 속앓이

청정지역 2022. 3. 8. 20:10






조선시대 서울 집값 속앓이.



수백년 전부터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오르는 집값에 속앓이를 해오고 있다.


tvN 드라마
'어사와 조이'을 봅니다.


"이 정도면 되겠어?
방은 두 칸이지만 지은 지
얼마 안 돼서 깨끗할 거야.


이 근방 매물로는 가장 나아.
전세나 월세도 가능한데
매입하는 것도 추천해, 값이 괜찮거든."


"그런데 이 집은 어떻게 아는데?"


"내가 이사를 좀 자주 다니거든.
내가 이사 오려고 알아 본 집이야."


"그런데 왜 자주 이사를 다니는데?"


"한양 집값이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아서 가만히 있다간
나중에 후회하거든. 작년 집값이
올해 전셋값 수준이었어."


"작년 전셋값이 올해 집값이라고?"


"아니. 그 반대라고."


"집값이 왜 그리 치솟고 있는거야?"


"돈 많은 고관대작들이
도성안의 집을
싹쓸이 해서 집값을 쥐락펴락 하거든.
집을 가지고 투기를 하는 거지."


"그런 게 가능해?"


"여긴 한양이잖아.
이 집은 내가 계약 마무리 해줄게.
쌀 30가마니 정도로. 괜찮지 않아?"


극 중 배경은 1636~1637년
병자호란 이후의 시대로 추정되며
집을 여러 채 가진 양반들이
부동산 투기를 벌이는 바람에 서민들이
고통을 받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실제로 수백 년 전에도 한양사람들은
지금처럼 높은 집값에 힘겨워 했다.


좁은 땅에 사람들이 자꾸 밀려들다
보니 문제가 심각할 수 밖에 없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발간한
'유만주의 한양'은
그의 어렸을 때 부터의 일기 '흠영'을
토대로 서울의 높아만 가는
집값에 대한 속앓이를 담고 있다.


18세기, 유만준은 창동의
자그만 초가집에 살다가
관직이 높아지고 살림이 넉넉해지자
번듯한 집으로 이사를 추진했다.


오늘날 공인중개사와 같이
집 거래를 돕는 '집주릅'이 권하는
창동과 그 근처 집을 여러 군데
보았지만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계약에도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결국 8개월 만에
빚을 내어 가면서 2000냥을 주고
명동에 집을 구했다.


그 금액은 그 당시 한양 최고급
주택의 10분의 1, 전세값의 7~8배,
생활비 125개월치에 해당했다.


또한. 그 돈은
쌀 3000말 값으로 여덟 식구가 무려
25년간 먹고도 남을 큰돈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분수에 맞지 않다면서 취소하라고
성화를 부렸으나 유만주는
새집에 살기를 고집했다.


한편 18~19세기 서울 서림동 일대의
주택매매 기록을 보면 그 당시 서울의
집값 상승상태를 엿 볼 수 있다.


1690년 160냥에 거래됐던 집이
1764년 200냥, 1782년 300냥으로
오르다가 1800년
900냥으로 확 올랐다.


예나 지금이나
집 없는 서러움은~~

1960년대 중반 시골에서
꿈을 안고 서울에 올라온 청년이 밤에
남산에 올라 외친 독백입니다.


"저 수 많은 등불 중심에
내 등불 밝히려 왔노라!!"


"그런데 저 넓은 하늘아래
내 몸 하나 뉘일 곳이 없구나!!
허나 기필코~. 내 등불을
밝혀둘 내집을 갖고야 말리라."


지금도 집 없는 불만,
내집만 덜 오른 불만 등등 세상이
집값불만으로 뒤덮혀 있습니다.


수 백년 전부터 이어온 일인데 지금까지~.

그 해결은 아직인듯 한데
그 날은 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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