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와신상담 과 절치부심

청정지역 2016. 10. 12. 14:32


▲ 와신상담(臥薪嘗膽)


    ♣ 와신상담(臥薪嘗膽)과 절치부심(切齒腐心) ♣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엎드릴 와(臥)/섶나무 신(薪)/맛볼 상(嘗)/쓸개 담(膽)자를 쓰는데 이는 한마디로 장작더미위에서 잠을 자고 곰의 쓸개를 핥는다는 말이지요 다시말해 어떤 목적을 이루기위해 괴롭고 어려운 시간을 참고 견딘다는 뜻이라 하네요 이 말의 유래는 춘추전국시대때 오나라 왕 합려와 월나라 왕 구천이 전쟁을 벌일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오나라와 월나라는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오나라의 왕 합려는 월나라에게 크게 대패하여 항복을 하였으며 항복한 오나라 왕 함려와 세자는 갖은 수모를 격으며 죽어야 했어요 전쟁에서 패한 오나라의 왕 합려는 죽기 전에 둘째 아들을 불러 놓고 꼭 아비의 원한을 풀어주고 복수를 해줄 것을 신신당부하며 숨을 거두었지요 바로 그 아들이 둘째아들 부차왕 이었어요 부차는 왕이 된후 반드시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다짐하였고 왕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며 방문 앞에 내시를 세워놓고 자신이 출입할때마다 "부차야 죽은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라고 외치게 했지요 결국 그는 3년만에 아버지의 원수인 월나라 왕 구천과 전쟁을 벌여 크게 승리하였으며 이 전투에서 크게 패한 월나라의 왕 구천은 부차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어요 그렇게 해서 겨우 목숨만은 구걸하여 고국으로 돌아온 구천왕은 땅을 치며 통곡했지요 그러면서 패배의 한을 씻기 위해 구천왕은 그날부터 방안에 곰의 쓸개를 걸어 놓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 쓸개를 핥으며 자기 자신을 채찍질 하였어요 그로부터 수년후 다시 오나라와 월나라는 전쟁을 하게 되었지요 복수심에 불타 암암리에 모든것을 준비한 구천왕에게 부차왕은 상대가 될수 없었어요 결국 오나라의 부차왕은 전쟁의 패배를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오나라는 망하며 월나라의 구천왕이 중국 전체를 통일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은 와신(臥薪)은 장작더미위에서 잠을 자는 것이고 상담(嘗膽)은 쓸개즙을 핥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부차의 와신(臥薪)과 구천의 상담(嘗膽)을 합친 말로 원수를 갚거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괴로움을 참아내고 견딤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하네요 다시말해 양쯔강 하류에 서로 적대적인 오나라와 월나라가 있었어요 이 두나라는 견훤지간으로 항상 우르렁 대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 병법의 대가인 손무가 오나라를 떠나고 오왕 합려가 주색에 빠진것을 알고 오나라를 공격했어요 이 전쟁에서 오왕 합려와 세자는 죽임을 당하고 오나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요 둘째 왕자 부차는 오왕이 되어 그날의 치욕을 갚기위하여 매일 장작더미 위에서 말을 자며 내시들에게 "부차야 너는 죽은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라고 아침저녁 인사 대신에 구천에게 원수 갚을 것을 각인시키도록 했어요 그렇게 오자서 등의 도움으로 수년간 복수를 다짐하고 부국강병을 이룬 끝에 오나라는 월나라를 몰살시키고 월왕 구천을 생포해 오국으로 압송하여 부왕인 합려의 묘지기 일을 보게하고 왕후와 함께 삭발시키는 등 치욕을 주었어요 수년후 구천은 오자서가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피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초나라를 경유해 월나라로 돌아 올수 있었지요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그날부터 곰의 쓸개를 핥으면서 복수를 다짐하였고 밖으로는 부차에게 경국지색이라고 불리는 서시를 보내어 부치왕을 뇌쇄 시켰어요 그러면서 구천은 온갖 진귀한 조공품이며 군대를 동원해 주는 등 진실한 신하로서의 예를 다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며 20년을 기다렸지요 마침내 부차는 제나라와 초 양강을 굴복시키고 또 다른 중원의 강국 진(晋)을 굴복시키며 기고만장하여 천자의 자리에 오르려는 틈을 타 월나라의 구천은 오국을 기습하였지요 라오허 산에서 화공과 수전으로 대승을 거두었고 마침내 구천은 부차를 죽이고 오국을 합병하였어요 . 이 고사로부터 와신상담(臥薪嘗膽)은 '장작더미에 누워 복수를 다짐하고 곰의 쓸개를 핥으며 노력하여 고난을 이겨낸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하네요 또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절치부심(切齒腐心)이란 말이 있어요 이는 끊을 절(切), 이 치(齒), 썩을 부(腐), 마음 심(心)자를 쓰는데 "몹시 분하여 이를 갈며 속을 썩임"이라는 뜻으로 매우 분해서 복수심으로 이를 갈며 벼르는 모습이지요 이는 '사기(史記)'의 '자객(刺客)열전'에서 유래하는데 절치부심(切齒부心, 이를 갈고 가슴을 치다) 절치액완(切齒扼腕, 이를 갈며 팔짱을 끼고 고심하다)이라고도 하지요 자객 '형가(荊軻)'는 연(燕)나라 태자 '단(丹)'에게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서는 '번어기(樊於期)' 장군의 목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태자는 차마 이를 감행하지 못하였지요 그러자 '형가'는 몰래 '번어기' 장군을 만났어요 '형가'가 말하였지요 "진(秦)나라는 장군에게 너무 가혹합니다. 부모와 일족을 모두 살육하고, 지금 장군의 목을 가져오면 황금 천근과 만호를 준다고 하는데 장군께서는 장차 어찌하려고 하십니까?" '번어기'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고 눈물 흘리며 말하였지요 "저는 매번 이를 생각할 때마다 뼈에 사무치는데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형가'가 말하였지요 "제게 연나라의 근심과 장군의 복수를 해결할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이 말은 들은 '번어기'가 다가앉으며 말하였어요 "어떻게 하면 되는지요?" 그러자 '형가'가 말하였어요 "장군의 머리를 진시황에게 바치고 싶습니다(願得將軍之首以獻秦王) 진시황은 틀림없이 기뻐하며 저를 만날 것입니다. 이때 제가 왼손으로 그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잡아 그의 가슴을 찌르면 장군의 복수와 연나라의 치욕도 사라지게 됩니다. 장군께서는 이렇게 할 마음이 있으십니까?" 이 말을 들은 '번어기'는 '형가'의 손을 잡으며 말하였지요 "그 방법이야말로 제가 밤낮으로 절치부심하던 것입니다(此臣之日夜切齒腐心也). 이제야 당신의 가르침을 받는군요." 이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번어기'는 스스로 목을 베었지요 이때부터 절치부심(切齒腐心)이란 말이 생겨났어요 반드시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때 우리는 와신상담(臥薪嘗膽)과 절치부심(切齒腐心)을 하지요 여러분도 이루고자 하는일 와신상담(臥薪嘗膽)과 절치부심(切齒腐心)하여 반드시 꼭 이루시기 바래요 -* (일송) *-


    ▲ 장작더미위의 부차왕


    越王勾践卧薪尝胆


    ▲ 쓸개를 빠는 구차왕



    ▲ 절치부심과 권토중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