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고전사

미실궁주(美室宮主)와 명기(名妓)

청정지역 2016. 8. 18. 11:05

어여뿐 미실궁주

      ♣ 미실궁주(美室宮主)와 명기(名妓) ♣ 10여년전 신라시대를 조명할수있는 화랑세기(花郞世紀)라는 책이 발견 됐어요 이책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언급이 되어 있었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요 우리나라 역사서 그 어디에도 그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10여년전부터 화랑세기의 간략본과 필사본이 발견되기 시작 했지요 하지만 그 원본은 확인 되지 않은채 그 간략본과 필사본만 발견되다 보니 역사학회에서는 진위여부를 놓고 다투고 있어요 그러나 몇가지 내용으로 보아 그것이 진짜 일수도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아요 이 책을 보면 신라 성덕왕때 미실궁주(美室宮主)라는 여인이 있었지요 방중술을 이용해 천하를 평정했던 여걸이었어요 미실(美室)은 법흥왕과 진흥왕 시대를 대표하는 훈신(勳臣)인 미진부(未珍夫)의 딸로서 풍월주인 미생(美生)의 누이이며, 풍월주인 하종(夏宗)과 보종(寶宗)의 어머니이고 김유신의 처조모 이지요 그러나 그녀는 치마속 방중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고 어릴적부터 각종 교태를 부리는 방법과 음주가무(飮酒歌舞)에 대한 노하우를 외할머니로부터 전수받았어요 지소태후의 아들 세종과 결혼했으나 타고난 색기로 인해 궐내를 어지럽힌다는 누명(?)을 쓰고 궁 밖으로 쫓겨 나오자 옛 연인이었던 화랑 사다함을 찾아가 살았지요 이후 사다함이 전쟁터로 떠나자 전 남편 세종이 그 방중술이 그리워 다시 궁으로 불러 들였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다함은 미실이 다시 세종의 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요절(夭折)하고 말았어요 그뒤 미실은 진흥왕의 아들 동륜태자의 연인이기도 하였으나 소문을 듣고 색정이 동한 진흥왕에게도 방사 솜씨를 발휘해 도교의학사에서 황제를 성교육 하는 현녀(玄女)나 소녀(少女)가 그랬던 것처럼 진흥왕의 성적 능력을 연마시켰다 하지요 그러나 아버지 진흥왕와 아들 동륜태자 사이를 오가며 방중술을 나눈것이 들통이 나자 또 다시 궁에서 쫓겨나 이번에는 죽은 사다함의 배다른 동생 ‘설화랑’과 정을 쌓았지요 그뒤 진흥왕은 미실과의 환상적인 섹스를 잊지 못하고 다시 궁으로 불러들였어요 미실은 진흥왕. 진지왕.진평왕등 3대를 섬긴 잉첩이었지요 정말 대단한 요부가 아닐수 없어요 거기다가 5대 풍월주 사다함. 6대 풍월주 세종전군.7대풍월주 설원랑과 관계 했어요 심지어 자기동생인 미생랑과도 사통 하기도 했지요 정말 미실궁주(美室宮主)는 대단한 여인이었지요 진흥왕과 진지왕, 진평왕, 동륜태자, 화랑의 우두머리 풍월주 네 명(사다함, 세종, 설화랑, 미생랑)을 섹스 파트너로 삼은 미실궁주(美室宮主) 한 나라의 왕을 방중술로 바꾸기도 했던 여인... 그런 요부가 있었음을 화랑세기 역사서는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사실 유교사상을 추종하는 유학의 시선으로 보면 화랑세기의 내용들이 믿기지 않을만치 음란하기 짝이 없지요 그래서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금서로 분류되어 전해오지 않았는지도 몰라요 실제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고 전해져 오는 역사서가 없어 정말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일반 백성은 그렇지 않았겠지만 왕실에서는 가능 했을지도 모르는 사실이라 하네요 음란보다도 왕실의 권력이 우선시 되었던 사회 왕실의 혈통을 중시 여겼던 사회였기에 가능했는지도 몰라요 앞서 선덕여왕과 삼서제에서 언급했듯이 사실 왕실의 혈통을 유지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성골은 진덕여왕에서 사라져 버렸지요 진덕여왕 또한 삼촌(위증)과 정사를 나누다 삼촌 위증이 복상사로 사망 하였지요 아무튼 신라시대 때에는 성적으로 개방을 넘어 음란에 가까웠는지도 몰라요 그런면으로 볼때 미실궁주(美室宮主)는 타고난 명기(名妓)임에는 틀림이 없는것 같아요 세월이 흘러 모든것이 개방된 현대에 와서는 미실궁주를 닮고 싶은 여인들이 많다고 하네요 그러나 내 남편을 확실히 옭아맬 ‘명기(名妓)’를 갖고자 하는 건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의 바람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명기는 타고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명기는 "신이 내린 명기"와 "갈고 닦아 완성되는 자기계발형 명기"가 있다 하지요 조사에 의하면 남자 64%, 여자 71%가 ‘노력하면 누구나 명기를 가질수 있다’ 고 하네요 그렇다면 명기(名妓)란 대체 무엇일까요? 남아프리카 호텐토트나 부시맨들은 소음순의 크기를 여성의 성적 매력의 척도로 삼고 중국의 고대의학에서는 ‘옥문과 겨드랑이의 털을 상세하게 조사해 부드럽고 촉촉하면 명기’로 쳤다고 하지요 명기를 판단하는 기준을 묻는 질문에 남자 46%, 여자 55%는 ‘질의 수축도’를 꼽았고 남자의 28%는 ‘질 안에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느껴져야 진짜 명기다’라고 답했어요 “나 어제 진짜 죽여주는 여자 만났어” 남자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한잔씩 들어가면 으레 ‘죽여주는 여자’에 관한 얘기가 안주거리로 오르지요 은근한 과시와 과장이 섞여 있는 것을 알면서도 부러운 눈빛으로 맞장구치고 있는 남성들을 보면 누구나 ‘명기’에 대한 환상은 부러움의 대상인듯 하지요 남자들 대부분은 굿 섹스의 요건을 남성의 크기와 여성의 수축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속설 때문에 ‘이쁜이’ 수술과 성기 확대 수술이 횡행하고 ‘속 좁은 여자’가 ‘질 좋은 여자’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까지 믿고 있는 실정 이지요 촉촉함, 따스함, 아늑함이라는 ‘3함’을 모두 갖춘 여성이라도 속 넓고 통 크면 남성의 쾌감이 반감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주름이 어떻게 져야 좋네, 입술을 보면 그곳을 알수 있네, 귓불을 보면 그곳을 알수 있네 등등 그곳을 판별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는가 하면 쫄깃한 것이 좋다는 둥, 질퍽한 것이 좋다는 둥 점입가경이지요 ‘큰 남자’와 ‘좁은 여자’가 정말 최고의 요건일까요? 아니지요 그 안의 공간 용적은 상황에 따라 다분히 가변적이라 하네요 여성의 질은 많은 주름으로 되어 있어 손가락에서 태아의 머리까지를 포용하는 놀라운 신축력을 가진 기관이지요 북한에서는 이곳을 ‘살틈’ 또는 '몸틈새'라 한다지요? 어떤 물건이 들어와도 빈틈없이 딱딱 맞힐수 있다는 뜻이라 하네요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때 아무 생각 없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는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요? ㅎㅎ -* (일송) *- .


      ▲ 세종 전군



      ▲ 화랑 사다함



      ▲ 하종(미실과 세종사이에서 난 아들)



      ▲ 진흥왕



      ▲ 동륜 태자



      ▲ 진평왕



      ▲ 진시왕



      ▲ 설월랑과 그의 정부들



      ▲ 설월랑




'명인 · 고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조왕건과 나주의 완사천  (0) 2016.09.02
도둑도 감동하게 한 선비   (0) 2016.08.19
망 부 석  (0) 2016.08.14
선덕여왕과 삼서제(三壻制)  (0) 2016.08.10
님은 아니 오시나이까   (0) 2016.07.24